성탄절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히2:14]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신 사건, 곧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 하신 사건이 성탄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사람의 모양으로 보내신 하나님께 찬양을 올립니다.
[히2:12]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사탄을 멸하시고 하나님 통치를 회복하시기 위함입니다.
[히2:14b-15]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셔서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셨습니다.
마귀의 권세를 멸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를 회복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첫째 목적입니다.
사탄이 뱀을 통해 첫 사람을 죄를 범하게 함으로 죽음이 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그 이후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죽음에 떨어졌습니다.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범죄한 첫 아담으로 인하여 찾아온 죽음의 권세를 멸하시기 위함입니다.
죽음을 가져온 마귀를 멸하고 죽음의 굴레 속에서 고통당하는 자들을 해방시키러 오셨습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을 이렇게 찬송합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사망을 끊고 평안히 놓아주시는 메시아를 보았습니다.
[누가복음 2:29]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2011년 10월 25일 – <로이터통신>은 7.2의 강진이 터키 동남부를 강타한 23일(현지 시각). 터키 공군 중위 오누르 에리아사르(이하 에리아사르)는 강진 소식을 접한 직후 기지를 떠나 에르지시로 달려갔다. 에르지시는 이번 강진의 최대 피해 지역으로, 공군 기지가 있는 반(Van)에서 100km 정도 떨어져 있다.
에리아사르가 에르지시로 달려간 것은 약혼녀인 굴 카라코반(25·교사)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에리아사르는 카라코반의 친구와 동료들에게 약혼녀의 행방을 물었다. 그 결과 지진이 발생하기 전 카라코반이 한 식당으로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카라코반이 점심식사를 하던 식당은 강진으로 무너진 상태였다. 그러나 에리아사르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둠이 내린 식당 주변에서 약혼녀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연인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절규였다.
카라코반과 함께 무너진 건물 밑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에리아사르의 외침을 들었다. 갇힌 사람들과 그렇게 연결된 에리아사르는 주변에 있던 구조팀 중 하나를 설득해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파게 했다.
건물 잔해에 묻혀 죽을 위기에 처했던 카라코반은 두 동료와 함께 구조됐다. 갇힌 지 18시간 만이었다. 카라코반은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옮겨졌다. 에리아사르는 "오직 그녀가 살아 있기만을 바랐다"고 말한 후 구급차에 함께 탔다.
사탄이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들을 죽음 가운데 몰아넣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100Km가 아닌 천국으로부터 이곳까지 성육신하셔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우리를 죽음의 권세로부터 끌어내셨습니다.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이를 깨달은 바울 사도는 이렇게 외칩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마귀를 멸하심으로 사망을 폐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죽음 대신 영생을 주셨습니다.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2. 우리들의 죄를 씻어주시기 위함입니다.
[히2:17]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심은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씻겨주시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죄입니다.
세상에서 무엇으로도 씻을 수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죄입니다.
백성의 죄를 씻겨주시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성육신하신 것입니다(요3:16;10:17)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언약 백성 사이의 중보적 역할을 수행하여 대속을 위한 제사 행위를 주관하였습니다.(민18:19; 렘33:20-26),
예수님께선 이런 대제사장의 직분을 맡아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속죄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더럽고 씻을 길 없는 죄문제를 안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몸부림치는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이렇게 베드로가 이렇게 답변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죄 씻음을 받는 세례를 받고 죄 사함과 성령을 받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런 죄씻음은 2천 년 전의 예루살렘 성도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죄를 씻겨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우리들에게 사도들은 외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씻겨주시기 위해 몸을 입고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3. 택하신 백성들에게 사명을 회복하셨습니다.
[히2:16]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오늘 우리들이 본문 속에서 깊이 생각해야 할 예수님은 붙들어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까닭은?
우리를 사망에서 살리시기 위함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죄를 씻어주시기 위함입니다.
나아가
우리를 붙들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붙들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임마누엘’이란 예수님 이름이 말씀해 주시는 것처럼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유대인들이 머리에 '키파'라고 불리는 빵떡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항상 그 빵떡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좀처럼 벗지를 않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쓰고, 기도할 때도 쓰고, 걸어갈 때도 씁니다. 심지어는 잠을 잘 때도 이 모자를 쓰고 있습니다.
이 키파는 '내 위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항상 나를 보고 계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들은 언제나 그 모자를 쓰고 다닌다고 합니다.
우리가 후원하는 터키의 김요셉 선교사님으로부터 긴급 기도제목이 전달되어 왔습니다.
“저희가 섬기는 카르탈 교회의 데니스자매가 종교시간에 기독교에 대하여 발표를 하였습니다. 그 반의 학생들이 반응이 너무나 긍정적이어서 학교당국에서 적잖히 놀란 것 같습니다. 데디스자매의 급우들이 교회에 찾아 왔습니다. 이 번 크리스마스에는 교감선생님과 함께 5명의 선생님들이 저희 교회를 방문하겠다고 합니다. 이 분들이 무슨의도로 교회를 방문하기를 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분들이 교회를 방문하여 자기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고 더 나아가 자기들도 성육신하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왜곡하여 문제를 삼으면 교회에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저와 우리 동역자들 그리고 성도님들에게 지혜를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설사 악한 의도로 왔다고 할지라도 다윗을 잡으려 사무엘이 있는 곳을 찾았던 사울이 성령에 감동하여 예언했던 것처럼 성령께서 저들을 주장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정말 긴장이 되는 시간입니다. 다만 우리는 택한 백성과 함께 하시며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그의 눈은 우리를 쳐다보고 있으며, 그의 팔은 우리를 감싸고 있다. 그리고 그의 귀는 우리의 기도를 듣는다. 그의 사랑은 만족한 것이며, 그의 약속은 불변하다".(존 뉴턴(Newton, John ; 1725∼1807)
우리는 김요셉 선교사님의 카르탈 교회와 성도들이 예수님의 붙드시는 손을 잡고 일어나기를 위해 기도드립니다. 사망에서 살려주신 하나님께서, 그리고 그들의 죄를 씻겨주신 주님께서 살려주신 백성들을 붙들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임마누엘의 예수님, 붙들어 주시는 예수님께 기도할 일입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가 이 예수님의 붙드시는 손을 잡고 일어나 대 사도가 되었습니다.
민족의 반역자 삭개오가 이 예수님의 붙드시는 손을 잡고 일어나 애국자가 되었습니다.
남편을 다섯이나 바꿨던 수가성 여인이 이 예수님의 붙드시는 손을 잡고 일어나 마을을 구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박해자 사울이 이 예수님의 붙드시는 손을 잡고 일어나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몸을 입으시고 우리 가운데 오셔서
죽음의 권세를 끊어버리시고
죄를 깨끗이 씻겨주시고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까닭은?
우리를 사망에서 살리시기 위함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죄를 씻어주시기 위함입니다.
나아가
우리를 붙들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붙들어 주시기 위함입니다.
[히2:13]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이 놀라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되었기에,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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