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27 April 2015
아휴, 이 철없는 것아! / 노하덕칼럼
두 살 된 아이는 아장아장 걸으면서 아들 위로를 향해 연방 총을 쏘고 있었다. 위로는 풍부한 연출을 하면서 그 총에 맞아 계속 쓰러지고 있었다. 위로가 쓰러질 때마다 그 아이는 너무 재미있어 깔깔 웃는다. 그러다 위로가 일어나기를 기다려 다시 총을 쏘곤 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40:1)는 말씀을 따라 이름을 '위로'라 지었는데, 오늘은 위로가 이름 값을 하는구나! 방문을 받은 아이의 가정에 좋은 위로가 되겠구나 싶었다.
심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에서 10살 된 아들에게 슬그머니 한마디 말을 던진다.
"오늘 너 참 재미있게 놀더라."
그런데 위로는 의외의 말로 답했다.
"아빠, 아이와 놀아주는 일이 얼마나 힘드는 줄 알아?"
위로는 재미있게 논 것이 아니고 노동을 하고 왔다는 말이었다.
철없는 아이를 데리고 교우들의 가정을 방문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목회자의 방문을 받는 교우들의 입장에서도 그렇겠지만, 하는 말 한 마디와 하는 행동 한 가지가 도움이 되었으면 싶은 것이 심방이다. 이런 취지를 충분히 알고 있는 어른들도 때로 실수를 한다. 하물며 아이에 있어서랴! 이런저런 사정을 다 이해하는 교우들은 이해할 채비를 하고 계시고, 어려워 말고 데려 오라고 신신 부탁하시지만, 철없는 아이를 데리고 심방을 해야하는 교역자로서는 입장이 좀 다르다.
"아빠, 나 잘했어?"
심방을 마치고 나오는 어떤 날, 아이가 선수를 치고 묻는다.
그것도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는 그분 앞에서.
'아휴, 이 철없는 것아, 오늘도 예배하는 시간에 오락가락했지 않니?'
답하고 싶지만 힘써 입을 닫는다.
사람들이 때로 자기의 하는 일에 후한 점수를 주기도 하지만, 이건 좀 심했다.
아이니까 아빠인 내가 이해해야 할 것도 같다.
'아이는 심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를 즐거워하지 않겠지.
방문한 집에서 일어난 실수를 채근 당하는 게 싫겠지.
집에 도착하는 시간까지 손을 들고 차에 무릎을 꿇었던 날이 생각났겠지.'
아들이 잘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이게 아빠의 마음이다.
아들이 잘할 때, 내가 잘한 것처럼 기쁘다.
나를 가정에 심방자로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
나를 목회지로 파송하시고, 어설프게 목회하는 내 모습을 보시는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하실까?
실수투성이인 나의 사역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조마조마 하실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할 종이 첫 사람 아담처럼 따먹어서 안될 열매에 손을 댄 일은 없을까?
주님 앞에 설 그날은 오고 있는데, 손들고 하나님 앞에 서야하는 건 아닌지...... .
송구스런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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