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가뭄이 왔다.
큰 저수지에 담긴 물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열길 되던 물이 다 빠져가고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바닥에서 살고 있는 많은 고기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바지를 걷어붙이고 뛰어들어 잡는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속옷 바람으로 고기를 잡는 사람, 굉장하다.
어떤 사람이 이 광경을 본 후, 총총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오래된 그물을 꺼내어 손질하기 시작했다. 한 나절이 다가도록 손질했다. 궁금한 그 부인이 용도를 물었다. 사정을 들은 부인의 볼이 붓는다.
그렇게 꾸물거리다가는 다른 사람이 고기를 다 잡아가겠다고.
해가 뉘엿뉘엿해서야 다 기운 그물을 들고 그는 저수지로 향한다.
그리고 너무 깊어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접근하지 못한 곳에 그물을 내렸다.
엄청나게 큰 고기들이 그물에 가득 담겨 올라 왔다.
고기를 잡을 줄 아는 사람에겐 저수지 하나도 이렇게 아는 사람이 복이 있다.
하물며 하나님을 알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을 받겠는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6:3)
사두개인들에게는 명예가 있었는데,
왜 100년 된 고목에서 피어나는 꽃은 볼 수 없었을까?
그들에게는 부요함이 있었는데,
왜 팔 때마다 솟아나는 우물이 없었을까?
그들에게는 건강이 있었는데,
왜 그들이 정작 올라가야 할 하나님의 사닥다리는 없었을까?
오랫동안 그 사회의 높은 지위를 독점하고 살았는데,
헬라가 온 세상을 다스리던 때도 줄 건 주고 얻을 건 다 얻고 살았는데,
독수리처럼 표독스러운 로마가 통치할 때도 기득권만은 유지할 수 있었는데,
왜
그들의 한쪽 가슴은 늘 텅비어 있었을까?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
그들의 조상 이삭이 파는 곳마다 솟아 나오던 우물,
그들의 조상 야곱이 세워두고
'크도다 이곳이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던 돌베게
왜 이런 행복이 없었을까?
아브라함은 외로워 보이는 나그네였으나
고독보다 더 큰 기쁨이 있었고,
이삭은 가는 곳마다 우물을 메우는 원수를 만났으나
덮는 현실보다 더 힘차게 솟아 나오는 생수가 있었고,
야곱은 생명을 노리는 형제의 위협이 있었으나
'크도다 이곳이여!'
살아있는 예배가 있었고.
현실에선 아무 것도 소유하지 못했으나
하나님 나라의 넉넉함이 있었는데..... .
왜
우리에게는 명예만 잎처럼 무성하고,
100년 된 고목에서 피어나는 소망의 꽃은 이리 보기 힘들까?
왜 우리에게는 욕심만 가시덩쿨같이 자라고
솟아나는 용서의 우물이 없을까?
왜 우리에게는 건강이 넘치는데,
정작 올라가야 할 사랑의 사닥다리는 없는 걸까?
내 인생의 꽃은
참된 부활의 그날,
생수의 근원이신 부활의 주님을 잊고 살아가는
아 ,
오늘의 사두개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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