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8 April 2015

이런 때 생각나는 사람 / 노하덕칼럼


          교회 생활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곧잘 만난다. 누구 때문에 시험을 받아 신앙생활을 쉬고 있다는 사람도 본다. 그런 때, 내게는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내가 사랑하는 드보라란 어린이다. 

그가 장로님의 딸이라서가  아니다. 
그가 다른 아이들보다 유독 예쁘게 생겼다는 말도 아니다. 
그가 나에게 어떤 좋은 선물을 주기 때문은 더욱 아니다. 
나같이 부족한 목사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목사로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세상에 이런 황송할 데가 있나!

        그가 두 살 때의 일로 생각이 된다. 어느 날, 여러 목사님들이 우
리 교회에 오셨다. 친목을 나누기 위해서였다.  모든 순서를 마치고 돌아가
시는 시간이었다. 정 장로님 가족은 돌아가시는 목사님들께 배웅하는 인사차 
뜰에 서 계셨다. 그때 그 사랑스런 어린 드보라 역시 부모님 손을 잡고 곁에 
서 있었다. 데보라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돌아가시는 목사님들 틈에서 갑작
스레 부모님께 큰 소리로 물었다.
"목사님 어디 계시지?"
지나가시다 그 소리를 들은 어떤 목사님이 시치미를 뚝 떼고 얼른 대답하셨
다.
"나 여기 있다."
캐나다에서 태어나 언어구사력도 약하고, 목사님이라면 담임 목사인 나밖에 
모르는 어린아이인지라 그 목사님께 정말 죄송스런 대답을 하고 말았다.
"넌 목사아냐!" 
너무 앙증스러운 대답에  그 곁에 서신 목사님들이 한 마디씩 거들었다.
"나도 목사님이다." 
"나도 목사님이야."
그러나 '드보라'란 그 어린아이는 그 훌륭하신 목사님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들은 목사님 아니야' 
캐나다산 경상도 사투리로 또렷하게 말한 후,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
더란다. 어린아이에게 기가 막힌 봉변을 당한 목사님 한 분이 호탕하게 한 
마디 하셨다.
"이 교회는 얼마나 목사 교육을 철저히 시켰기에 이런 어린아이까지 자기 담
임 목사 아닌 목사는 목사 취급조차 않는 거야?" 
모든 사람들이 박장대소 하셨다.
이 어린이를 보면 늘 사랑스럽다. 나를 인정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고보
면, 목사도 자신을 인정해주는 교인에게 좀 마음이 쏠리는 지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가 너를 지도하시리라'
'나를 높이는 자를 내가 높이리라.'

  그 드보라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더 나누고 싶다. 드보라도 
자라서 유치부을 졸업하고 유년부에 올라갔다. 어떤 주일 학교 선생님이 선
물로 사온 성경책을 유년부에 갓 올라온 어린이들에게 나누어주시며 물었다.  
"어린이 여러분, 이 좋은 성경책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참하게 생긴 어린이가 조용히 손들었다.
"책꽂이에 잘 꽂아두어야 해요."
좀 의외의 답에 그 선생님은 다시 물었다.
이번엔 똘똘한 녀석이 힘차게 말했다.
"잘 감추어 두어야 해요. 도둑놈이 가져가지 못하도록"
맙소사.
그때 이 신앙의 어린 용사, 드보라가 손을 들었다.
그리고 또렷이 답했다.
"읽어야 해요!"
얼마나 귀한 대답인가! 어른들도 성경을 꽂아두고 한 주일이 다 가도록, 나
의 갈 길 다가도록, 마음을 기울여 읽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어린 유년부 1
학년이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는 성
경을 읽어야 한다니. 이렇게 확실한 입장에 서 있는 드보라가 내게는 사랑스
럽다!

교회생활을 잘 할 수 있다면, 그는 분명 성공한 사람이다. 교회생활의 성공
적 교회생활의 열쇠는 교인과의 관계, 목회자와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교우와 목사님을 
인정해 보라.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을 늘 청종해 보라. 그 
지점에서 우리는 성공의 열쇠를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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