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권사님의 연세가 8순이 가까우시던 어느 주일이었다.
권사님께서는 예배시간에 요한 복음 14장을 암송하셨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爲)하여 처소(處所)를 예비(豫備)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爲)하여 처소(處所)를 예비(豫備)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迎接)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곧 요단강을 건널 그런 비장한 장군의 유언 같은 분위기여서 모두들 숙연했다.
그런데 그날 오후,
당시 90세이시던 그 부군, 송희선 할아버님께서 소천하셨다.
송희선 할아버지는 함께 예배를 드리셨고,
예배와 친교 후,
잠시 밖에 나가셨던 것인데 심장이 멈추었던 것이다.
그날 할아버지는 주님께서 예비하신 그곳으로 가셨다.
그래서일까?
최화순 권사님은 우리에겐 안나 같은 여선지자, 그런 분이시다.
둘
"이번 여름엔 나랑 함께 여행을 떠납시다."
9순이 다 되신 어느 날, 진담만 골라 하시는 어른이, 여행을 함께 가시겠다는 말씀을 농담처럼 가볍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엔 숙소 예약까지 마쳤다면서 한 주간의 일정을 제시하셨다. 효자 사위 John Franklin 함께 한 주간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 일정이었다. 권사님의 꿈은 나와 연결될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달려가고 싶은 낭만이 깃든 덕담이 되었다.
칭찬해주는 말, 긍정적인 말, 힘을 주는 말.
말씀 한 마디가 늘 기쁨을 준다.
최권사님은
내가 만난 좋은 사람들 중에서 참 낭만이 넘치는 분이다.
셋
"목사님, 치매 약 안주세요?"
눈이 쇠약해지신 권사님은 내가 큰 글씨로 만들어드린 성구를 치매약이라 부르신다.
권사님이 성경을 사랑하시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말씀을 암송하는 때마다 성도들은 새삼 놀란다.
일점일획, 토씨 하나까지 존중하고 암송하시는 권사님,
눈이 어두워져 이제 잔글씨를 읽지 못하지만, 엄청 크게 복사를 해드리면 그것을 특수 돋보기로 읽어서 성경을 외우시는 최권사님의 성경암송 실력은 아직 여전히 선두에 서 계신다.
어떤 분은 우리 교회에 최권사님 말고도 성경 암송하는 분이 많아요 하시지만, 정성은 말할 것도 없고 실력면에서도 비교가 전혀 되지 않는다.
노회체육대회에서는 2년째, 모든 행사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많은 성도들이 모여 권사님을 통해 암송되는 성경을 듣고 폐회예배를 드렸다. 요한복음 21장 암송하시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꼭 주님께서 우리에게 앞에 서서 말씀하시는 것 같다.
넷
이번에도 아슬아슬한 순간을 겪으셨는데, 다시 살아나셨다는 권사님을 병원에서 뵈옵고 안도의 숨을 쉰다. 병상을 찾은 나에게 2주전에 복사해 드렸던 마태복음 7장을 외어 들려주신다. 와! 그 생사가 갈리는 요란한 병상에서 그 성경을 다 외우셨구나! 언제 기절해 병원에 긴급후송되었느냐는 듯이. 권사님 하시는 말씀이 더 놀랍다.
"의사가 열심히 일하고, 내 딸과 사위가 다 뛰는 데 내가 할 일이 있어야지요. 성경 암송하는 일밖에."
권사님,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권사님
그리고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는 권사님,
낭만과 여유가 늘 있으신 우리 권사님,
오래 우리 곁에 계셔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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