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30 April 2015

참 좋은 분을 만났어요 / 노하덕 칼럼


           1930년대 대공황이 아메리카 전대륙을 휩쓸고 지나가던 때의 일이다.
일터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은 삶의 의욕을 잃고 절망의 늪을 지나고 있었다.
붉은 색 머리로 인하여 레드로 불리는 제니,
그는 어릴 때 승마를 배울 만큼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렇지만 1930년대의 경기 공황으로 생계조차 이어갈 힘이 없게된 부모님이 그를 경마장에 두고 떠난다. 그는 돌아오겠다는 부모님의 약속을 기다리면서 그는 고아처럼 외롭게 자란다. 구태여 직업을 말하라면 오기만 가득찬 승마사다. 승마사라지만, 제대로 훈련을 받은 적도 없어서 몇 차례 대회에 출전해본 것이 전부다.

'비스킷',
이는 경주용 말 이름이다.
조상은 스무 차례나 경마대회에서 우승할 만큼 명마였지만, 막상 자신은 경주용으로 쓰임받기에는 너무 체구가 작다. 경주에 맞게 길들여 지지 않아서 중구난방으로 뛰나 우승은 할 것 같지 않은, 성질만 고약스런 말이다. 조련사의 눈에는 '경주가 무엇인지 모르는 성에 차지 않는 말'이다.
이 두 존재가 좋은 주인(하워드)과 조련사(챨스)를 만나 그들의 초대를 받는다. 늘 마구간 곁에서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그들이 남겨주고 간 책을 읽곤 하던 레드는 좋은 주인의 상에 앉아 함께 먹는 선대를 받게 된다. 그리고 따뜻한 주인의 배려와 좋은 조련사의 훈련을 통해, 결국 미국 승마계를 제패하는 개가를 올린다.
 그러나 기쁨은 잠깐, 레드란 승마사는 사고로 다리가 부스러지고, 비스킷이란 말은 인대가 상하여 안락사를 시킬 수밖에 없는 처지에 떨어진다. 기우는 달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처럼 그들의 잘나가던 인생도 마침표를 찍어야 할 형편이다
인대가 상한 말, 그래서 안락사를 시켜주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되는 그 절망,
사고로 다리를 바삭바삭 부서진 상태에서 겨우 걷게 된 레드란 승마사
이 둘이 치열한 경마세계에서 살아날 길은 없어 보인다. 아무도 그들에게서 다시 우승이란 행운을 기대할 수 없다. 온 집안 주변에 구름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바라본다.
그리고 서로의 아픔을 이해한다.
주인의 따뜻한 배려와 보살핌을 받는다.
그 동안 쉴 틈 없이 달려왔던 경마장을 떠나, 푸른 초장을 절룩거리며 걷기도 하고 그 잔디밭에서 쉼을 갖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인대가 상했던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던 그 말이 회복되어 초원을 달리게 되고
그 곁에서 절뚝거리며 걷던 승마사 레드는 받침대를 발에 붙이고 말 위에 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종국에는 자기들과 같이 절망과 좌절의 늪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몸부림치는 수많은 서민들의 환호와 응원 속에 경마장에 다시 선다. 그리고 그들의 재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친구 경마사의 격려를 받으며 당당히 우승의 감격을 누린다.
'씨비스킷'이란 영화 마지막 장면은 이런 문장으로 끝난다.

우리가 녀석을 치료했던 것이 아니다.
사실은 그가 우리 모두를 치료해준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를 치료해준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로 세상에 태어났을지라도
죄와 경건치 않음과 불법을 범하고 망가져가던 나를
하나님께서 불러주시고
그 보혈의 은혜 아래서 자녀됨을 회복하게 하신

하나님의 자녀답게 되는 지혜를 생각나게 한다.

좋은 주인을 만나라
그분의 훈련 프로그램에 순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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