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8 April 2015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거야 / 노하덕칼럼
눈 때문에 고통을 당하시는 어떤 분과 함께 안과에 들렀다.
내 눈처럼 살펴주시는 의사 선생님
너무나 고맙다.
일을 마치고 나오던 그분은
뜨끈뜨끈한 떡을 사들고 의사 선생님을 찾는다.
내 눈에 티끌을 빼주는 사람이 고마운 때문이다.
물이 가득 담긴 물 컵에 젓가락을 꽂아 두면
젓가락이 굴절해 보인다.
젓가락은 그대로인데 물에 넣으니 굴절해 보인다.
아들이 아버지 사랑하는 것이야
어느 아비인들 모를까만
비판으로 표현되면 아버지는 싫다.
요나단이 그 아버지를 위한 사랑을
사울 왕인들 모를까만
그 사랑이 비판적으로 표현되면 그 아들 향해서도 창을 던지려 한다.
비판 기능이 죄일 리 없고
자기 눈에 들어 있는 티끌 빼어준다는 데
싫을 까닭이 없지만
티끌을 잘못 빼면 눈을 상한다.
천국에는 비판이 있을까?
천국 백성이 하나님을 비판하겠나?
형제를 비판하겠나?
그래서 천국은 내 눈의 티끌조차 들보처럼 커 보이는 곳
지옥에는 비판이 없을까?
지옥에는 비판하는 소리로 왁자지껄할 것이다.
'당신 때문에!'
부부였던 사람끼리 비판할 것이다.
'너는 왜 그 때'
형제끼리 서로 비판할 것이다.
지옥은 형제 눈의 티끌이 들보처럼 커 보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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