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27 April 2015

이 열쇠를 늘 품에 간직하여라.' / 노하덕칼럼


           "따르릉! 아빠, 어디 있어요?" "왜 그러니?" "문 열어주세요!" "아니, 너에게 열쇠를 만들어 주었지 않니?" "찾아봐도 없어요."
           이제 위로(아들)도 열 한 살! 열쇠가 있으면 서로 편리한 나이가 되었으니 너도 열쇠를 가지고 다니거라. 그래서 열쇠를 만들어 준 게 이번이 세 번째다.  그런데  막상 필요할 때, 없단다. 아이는 열쇠를 잃어버리고 미안한 마음에서였든지 상당한 시간을 밖에서 보낸 모양이다. 부랴부랴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달려가며, 어쩌면 우리 신앙인의 모습이 이렇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 성도들에게 주신 특권이 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주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이 아버지 집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자녀된 자에게만 주신 특권이요, 자녀된 자가 그 나라에서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특권의 열쇠이기도 하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녀에게 주신 열쇠다.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는 그 열쇠다. 자녀된 우리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특별히 제조해 주신 열쇠다.
           이 열쇠를 하나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는 넉넉한 세계가 있다. 그곳에 들어가 안식할 수 있다. 그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풍요한 것들이 많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하나님의 자녀는 그곳에서 누린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랑을 성도들은 그분 안에서 행할 수 있다. 오른뺨을 때리는 자에게 왼뺨을 내놓을 수 있다. 겉옷을 달라는 자에게 속옷을 줄 수 있는 마음이 그곳에 있다. 오리를 가자는 자에게 십리를 함께 가줄 수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 데나 이 소중한 열쇠를 던져두고 살아간다. 참으로 가끔은 고난의 길을 가게 되면, '이 열쇠를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정작 사용하여야 할 그 시점에서 그 열쇠는 어디 두었는지 생각이 가물가물하다. 결국은 사용할 수 있는 시기를 놓쳐버리고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간다. 자꾸만 영혼은 파리하여 간다.
           기다릴 아들의 모습을 그리며, 내가 달릴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를 내어 아들이 기다리는 집을 향해 달린다. 그는 출출한 배를 움켜쥐고, 문밖에서 서있다. 보자마자 반가워하며 하는 첫마디, "아빠 왜 이제 와?" 눈물을 글썽이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음속으로만 말하고 만다. '어쩌면 너는 꼭 나를 닮았냐?' 오늘은 다시 열쇠를 하나 만들어 주어야겠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다짐해야지. '다시는 이 소중한 열쇠를 아무데나 팽개쳐두지 말아라. 너의 생명의 열쇠를 늘 품에 간직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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