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27 April 2015

그것은 또다른 나의 시작이었다. / 노하덕칼럼


큰 일을
크고 비밀한 일을 기대하던 나에게
가난한 할머니가 작은 물질을 손에 쥐어 주셨다.

성전 건축 헌금!

백  수십만불을 손에 쥐고도 망서리고만 있는 교회가 있는데
맨손과 다를 바 없는 우리에게
이 작은 헌금으로 어찌하란 말인가?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선행을 하고.
나름대로들 하나님께 평가를 받고 있겠지만.
그러나 이 작은 헌금은
참 무겁게 가슴을 두드린다.

부자들은 헌금을 많이 했다.
아끼는 재물이었지만 헌금 바구니가 넘치게 바쳤다.
하지만 자기들 보기에 많았을 뿐.
저마다 나름대로 하고 있을 뿐.

가난한 과부는 오직 두 렙돈을 바쳤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많다고 평가하셨다.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많았기 때문.

오병이어로 수만명을 먹이셨던 날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 나름대로 음식을 가지고 있었으리라.
그 아이보다 풍성한(많은) 음식을 가진 사람도 있었으리라.
그 아이보다 맛있는 음식을 가진 사람도 있었으리라.
그 아이보다 값비싼 음식을 가진 사람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의 음식은 평가받지 못했다.
다만 예수님 손에 들려진 어린 아이의 오병이어만 평가 받았다.

오병이어가 어린아이가 가진 먹을 것 전부였던 것처럼
두렙돈은 그 여인의 생활비 전부였다.
사렙다 과부가 밀가루 한줌과 작은 양의 기름이 그 가진 양식의 전부인 것처럼
두렙돈은 그 여인의 생활비 전부였다.
바나바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은 재물은 밭을 판 돈 전부인 것처럼
두렙돈은 그 여인의 생활비 전부였다.
값진 향유가 마리아의 전 재산이었던 것처럼
두렙돈은 그 여인의 생활비 전부였다.
사무엘이 한나의 전부였던 것처럼
두렙돈은 그 여인의 생활비 전부였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전부였던 것처럼
두렙돈은 그 여인의 생활비 전부였다.

그렇다면
나는 알아야 한다.
그 구차한 중(中)에서 자기(自己)의 있는바 생활비(生活費) 전부를 넣은 할머니의 작은 헌금은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자기 힘만으로만 살던 우리 인생이 끝나고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성전이 시작되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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