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27 April 2015

고통은 과연 하나님의 커다란 실수인가? /노하덕칼럼


"왜 하나님은 상처받은 이 세상을 허용하시는가?
왜 고통은 그렇게 불공평하게 분배되는가?"
입이 부은 사람들에게
Paul Brand(한센병의 세계적 전문가)는 이런 특이한 선언을 한다.

"고통을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나는 하나님께서 그보다 더 좋은 일을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다.
고통은 정상 기능을 발휘하는 생활에 있어서 시력이나 심지어 양호한 혈액 순환만큼 필수적인 것이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위험 천만한 것이 될 것이다.
기본적인 즐거움을 모르고 지낼 것이다."

고통은 우리를 변화하도록 만드는 하나의 동기가 된다
우리는 고통을 느끼게 될 때 움직이니까.(릭 워렌)

요즈음 다윗의 노년을 읽는다.
그 놀라운 거장의 마지막 장이 왜 그리  초라할까?
이에 반하여 모세의 인생은 노년에 이를수록 왜 더 빛이 나는가?
고통 속에서 변화를 수용한 까닭이 아닐까?
공주의 아들이었으나 그는 고통받는 자기 민족과 함께 서더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미디안 광야에서도 다시 한 번 변화하더니.
고통을 통해 모세는 하나님의 것으로 변화한거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며
고통을 적이 아니라 친구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에버릿 쿠브)
그리고
이 땅에는 고통을 느끼지 못해서 참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만난다.

           독일의 유명한 목회자요 신학자인 Helmut Thilicke 는
미국을 여행한 후,
미국인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있는 가장 큰 결함이 무엇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고난에 대해 부적합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란다.'

고통이 악평을 받고 있는 세상이다.
           미국인이 전 세계 인이 쓰는 진통제나 마취제의 50%를 쓰다는 말을 들을 때
그들은 부적합한 견해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고통에 대하여 저항력을 잃은 걸 느낀다.
         
가난한 인도사람들은 그들이 가난에 별로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데.
미국인에게는 지나치게 고통스럽고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보고를 받는다.

고급 구두일수록 더 많이 두들겨 맞는다.
다이아몬드도 cutting이 많이 된 것일수록 더욱 빛이 난다.
세계적인 명품 도자기 본차이나는 뼈를 부수되 분가루처럼 곱게 부수어 만든다.

나의 고통지수는 얼마인가?
고통스런 상황을 저주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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