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29 April 2015

내가 바로 소자네 / 노하덕칼럼


이 글은 한국에 살고 있는 한 젊은 부부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고 필자가 그 입장을 생각하면서 작품화 한 것입니다.
-------------------------

하나.

내 남편이 그 소자의 보증 빚 때문에 고통을 당한 지는 벌써  10년째다.
그 소자는 다른 사람의 돈을 유용한 일로 벌써 감옥을 다녀온 터였다.
그 소자의 처는 한사코 내 남편을 붙들고 통사정한다.
내 남편이 그 소자를 고소하면 그 소자는 다시 감옥에 가야 한다고.
더구나 그 소자의 어린 아들은  심장병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오늘도 내 남편은 소자를 고소하는 대신에 그 소자의 빚을 대신 짊어지고 버거운 삶을 오른다.
쥐꼬리만한 소득의 소중한 부분이 그 소자를 위한 이자 돈으로 매달 지출된다.
내 남편의 소박한 꿈은 수년간 들어온 적금을 찾아 그 소자로 인한 빚을 떨쳐버리는 일이다.

지은 죄가 많아 소자요
내놓을 것 없어 소자다


둘.

새로 신입 사원이 입사했다.
내가 이 회사에 처음 들어왔던 때가 생각났다.
낯선 일뿐인데 알려주는 사람 아무도 없는 것이 참 서글펐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아야지.'
새로 들어오는 사람에게 친절히 모든 걸 안내해 주어야지.
좋은 친구가 되 주어야지.
그러나 이번 들어온 그 사원은 참 잘났다.
도와주고 싶은 데 도울 곳이 없다.
자랑할 게 별로 없어 보이는데
한사코 자신을 자랑하려 드는 걸 보니 그는 분명 소자다.


할 일 많은 세상에서 미운 짓만 골라하는 그 사람,
위로가 필요한 내 인생의 고비에 말끝마다 상처를 건드리는 그 사람,
침묵했으면 싶은 일에 끊임없이 말을 만들어내는 그 사람,
만나면 불편한 그 자리에 저 홀로 편안히 존재하는 그 사람
생각만 해도 불쾌한데 한 시도 쉴 새 없이 내 머리 속을 휘감는 그 사람,
다시 보고 싶지 않은데
그러나 변함없이 내 앞에 나타나는 그  사람
그는 분명 소자다.




남편과 함께 길을 가다 화원 옆을 지난다.
흐드러지게 화안히 핀 꽃이 오늘따라 유난히 마음을 끈다.
'여보, 저 꽃 참 예쁘지?'
남편은 말이 없다.
아무래도 머리가 좀 덜 미친 듯하고
가슴이 좁아 보인다.
소자다.

그날 밤,
나는 힘에 넘치는 일로 인해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다.
오랜 독감으로 몸이 너무 약해졌나 보다.
그러나 남편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더니 휭하니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누구 빚 갚느라 이 고생인데 남편이란 작자가 이럴 수 있나?'
섧다.
힘든 날 위로가 되기 보다 슬픔을 주는 남편,
유익이 되기보다는 손해를 끼치는
그는  분명 소자다.
힘이 되기보다는
짐이 되는
그 소자를 향한 분노가 밤이 깊어갈수록 더 크게 타오른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든 폭발직전의 깜깜한 방안으로
남편이 들어온다.
그 품에는 내가 그렇게도 갖고 싶어하던 꽃이 한 아름 안겨 있다.


아내가 꽃을 갖고 싶어하는데 사줄 돈이 없어서
몇 시간 동안 대리 운전을 하였다는 말과 함께.

'대리 운전 해 보아야 얼마 받지도 못하는데........  .'

알고 보니,
이 착한 남편을 소자로만 몰아 세우고
사랑과 기다림 대신 분노로 밤을 지샌
내가  바로
소자다.


부부란 좋은 부분만 껴안고 사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빚까지도 떠안고 사는 관계다.

그분의 말씀이 귓가에 스친다.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마18:10)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