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은 한국인에겐 나름대로 의미 있는 달이었다.
아시아에서 처음 월드컵이란 것이 개최되었고
그 중 50년 가까이 문을 두드리던 한국인들은
꿈에나 생각할 법하던 세계 4강이란 위업(?)을 달성했으니까.
그러나 캐나다 교민들에겐 같은 시기에 또 다른 역사가 기록되고 있었다.
100년이 넘게 복음의 빚을 지고 살아왔던 대한민국 인들이
복음을 들고 땅 끝까지 찾아가기 시작한 지 수 십 년
이젠 어엿한 선교사 파송 수가 12,000!
세계 4강을 벌써 넘어섰고
그 중 300여명이 캐나다 교회를 찾아온 것이다.
저마다 하나님께서 우리 한인 교회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선교의 열정을 불붙이기에 전심을 기울였는데
전하는 선교사님이나 선교지의 소식을 듣는 모두에게
우리가 서 있는 역사를 새롭게 생각해보게 했다.
우리 교회에 보내주신 선교사님은 여섯 분!
C국에서 두분
인도네시아에서 한 분
독일에서 한 분
싱가폴에서 한 분
태국에서 한 분
와!
참 놀라운 만남이었다.
모두가 반갑고 감사했다.
꿈같은 열흘이 순식간에 가고
드디어 월드컵 4강 전이 벌어지던
6월 25일이 왔다.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우리는 그날 승리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독일이 축구 강국이라는 차원을 떠나
상암경기장으로부터 온 세계에 울려 퍼졌던 독일 국가(國歌)는 벌써 심상치 안았다.
독일 국가의 내용이 무엇이었든 우리에겐 익숙한
"시온성과 갖은 교회 그의 영광 한없다!"는
의미만 감돌고 있었으니까!
더욱 그렇겠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J 선교사의 간증이었다.
자신이 두만강 가에서 체험한 바로는
한국은 아직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승리를 기뻐하지 못하는 북한 2,500만의 동족과 조선족들을
자기 눈으로 똑똑히 보고 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독일은 이미 통일을 이루었고
한마음으로 승리를 기도하는데
아직 나누어진 우리가 어떻게 이기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 4강에 머물러야 했지만
선교는 그럴 수 없었다.
300여명의 선교사님들은 각 교회에서 열심히 뛰었다.
사자후를 토했다.
눈물로 교회를 종횡무진 누비며
주님의 살아 역사 하신 현장을 전했다.
각 교회 성도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좋은 것을 선교사님들과 함께 나누었다.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몫을 다했고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최선을 다했다.
잘 사는 사람들은 살 사는 대로 잘 사는 값을 했고
가난한 성도들은 두랩돈으로 힘을 모았다.
아직 고국의 서해바다에서는
꽃게 어장을 줄달음질하며 동족끼리 피를 흘리고 있지만
우리는 결국 선교사님들을 더 많이 파송할 것이며
왕 같은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것이다.
그리고
선교 강국으로서의 우승을 해낼 것이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또 다른 의미의 애국가를 부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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