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30 April 2015

내 인생에 피어난 예수님의 부활 / 노하덕칼럼


마라토너처럼
먼 거리를  허우적거리며 달리고 또 달려오길 수십년!
잘 달린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 난 그렇게 좋은 경주자가 아니었습니다.
때로 경건치 않은 길로도 달려갔었고
때론 부끄러운 죄악의 길로도 미끄러져 갔었습니다.
이래저래 수없이 넘어졌고
정말 이제는 이 경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절망의 절벽에도 여러 번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 덫에 걸려  꼼짝달싹할  수 없는 어린양처럼
헐떡거리던 나의 통곡을 주님은 들으셨습니다.

그때,
제가 선 땅은 한나의 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었고
영하의 온도는 엘가나의 사랑처럼 고독했고
브닌나의  언어처럼 살 끝을 파고드는 찬바람으로 마른땅이 되어갔습니다.

그래도 부활하신 주님은 가시나무 같은 제 인생에 백합화처럼 피어있었습니다.
바람이 불어 제 가시가 흔들리노라면
채찍에 맞은 여린 살결처럼 주님의 몸은 찢기셨고
아플수록 더 진동하던 그 주님의 향기를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자랄수록 주님은 찔렸고
제가 강해질수록 주님께선 깨어졌으나
커다랗게 망울진 사명을
밤새워 이슬에 담아
온종일 소중한 꽃으로 터뜨리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을 찾아오셨던 그 부활의 주님께서
차갑고 슬프기만 한 저의 가슴에 기쁨을 가득 채워 주셨고
다메섹으로 가는 길까지 바울을 찾아오셨던 그 주님께서
강퍅해진 나를 천둥처럼 큰 소리로 깨우쳐 주셨고
디베랴 바닷가로 고기잡으러 갔던 제자들을 훈훈한 숯불로 데우셨던 그 부활의 주님께서
아시는 바대로
저의 식어가던 첫사랑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저는 절대로 부인하지 않을 겁니다 맹세하기를 여러 차례
결국은 하루 세 번씩 밥먹듯이 부인할 수밖에 없었던 저에게
새벽 닭 울음처럼 변함없이 가슴을 울려주셨습니다.

저는 늘 혼자라 생각하고 달렸었는데
알고 보니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늘 제 곁에 계셨습니다.

이렇게 경주하기를 계속하노라면
어느 날 저는 결승점에 서서 그 영화로운 면류관을 받게 될텐데
그날이 저에겐 지금부터 부담스러워 집니다.
지금 저의 경주가 보기에 따라서는 상당한 지점까지 온 것 같지만
이게 어디 제가 잘나서 여기까지 온 것입니까?
부활하신 주님께서
포기하고 싶었던 저를 격려하셨고
쓰러져가던 저를 부축하셨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저를 뒤에서 밀어 주셨고
두려움으로 멈칫거리는 저를 끌어주셨기 때문인걸요.
결국 나의 나되기까지 땀흘리시며 수고하신 분은 주님이신데
결승점에서 상은 제가 받아야 할 것이니
이런 송구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모양도,
풍채도,
흠모할 만한 것도 없이
내대신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나아가셨던 분은 주님이신데
영광의 면류관은 제가 받아야 한다니
이런 죄송한 경우가 있을 법이나 한 일 입니까?

세상에 비옥한 땅에서 지혜롭게 자라신 분들도 많은데
못 보신 듯 뒤로하고
마른 땅으로 굳어버린 내 인생에 찾아오신 생명의 줄기여!

오늘,
이 부활의 아침에
존귀와 영광을 홀로 받으소서
찬란한 나의 부활,
나의 생명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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