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 나갔다가 가을이 기울기까지 달려 있는 사과를 하나 딴다. 이 좋은 사과가 주렁주렁 열려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금년도 과일 농사를 잘못했구나!' 마음이 쓰리다. '잘만 되었으면, 먹음직한 사과인데........... .' 가지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무성한데 왜 이처럼 열매는 초라할까?
과일 나무를 아는 사람이 곁에서 한 마디 거든다. 봄날, 가지치기가 중요하다고. 과일을 풍성히 얻으려면, 여기저기 자라는 가지들을 마냥 감사만 하고 있어선 안 된다고. 좀 아깝더라도 열매맺을 수 없는 묵은 가지는 잘라주어야 한다고. 그 말이 옳다. 여기저기 풍성히 꽃이 피고 또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다고 너무 좋아했었다. 그 많은 꽃이 열매되길 바랬고, 그 많은 작은 열매가 모두 가을까지 자라주길 바랬다. 솎을 만한 열매는 좀 야무지게 솎아주어야 했는데. 너무 했다 싶을 만큼 가지를 끊어주었어야 했는데. 끊어주어야 할 가지를 끊어주지 않다가, 나무 전체를 버렸구나.
가인을 생각한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얻었다는 그 가인 말이다. 그는 분명 한 경고를 하나님으로부터 들었다.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독초처럼 치고 올라오는 죄의 소원을 잘라 주었더라면 그는 인류 최초로 승리자가 되었을 것이다. 의의 열매를 맺었을 것이다. 훗날 사람들은 그를 생각하면서 그 무서운 죄를 잘라버리고 의연히 선 가인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졌을 것이다.
실로의 제사장들, 신앙의 용장 사무엘의 못 판이 된 집안을 기억한다. 잘라버렸어야 할 죄의 가지들을 치지 못하다가 끝내는 자신의 목이 부러지고, 전쟁에 아들들을 다 잃어버린 제사장 한 분을 생각한다. 그들이 일찍 죄의 가지치기를 잘 했던들, 우리는 우리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사무엘 대신 홉니와 비느하스를 기억했을 것이다.
롯과 그 가정을 생각한다. '네가 우 하면 나는 좌 하고 네가 좌 하면 나는 우 하리라!' 선택권을 받았을 때, 롯은 죄의 가지를 자르는 선택해야 했다. 결국 두 딸로부터 죄의 씨를 받아 에돔 암몬을 세워보지만 그게 무슨 의의 열매일 수 있는가? 멸망한 소돔 곁에 소금기둥으로 선 그 아내와 함께 부끄럽기만 할 뿐이다.
삼손과 같이 있다고 덥썩덥썩 받아먹지 말고, 믿음의 조상 요셉과 같이 우선 달콤해 보이더라도 뿌리쳐야 할 것은 뿌리칠 수 있을 때, 열매는 맺히는 법이다.
'주를 향하여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신랑되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라고 믿는 우리가, 오늘도 자신을 죄에서 정결케 하는 죄의 가지치기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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