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30 April 2015
부서지는 아름다움 / 노하덕칼럼
하나
아들 위로와 함께 카누에 올랐습니다. 저는 카누를 사실상 처음 타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위로는 어릴적 한 번 타 본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용감한 부자가 되어 대서양에 우리의 카누를 띄웠습니다.
하지만, 그건 만용이었습니다. 두 사람 다 미숙하다보니 카누가 우리 뜻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습니다. 제멋대로 떠 다닙니다. 바람은 물결을 출렁거리는데, 우리는 서로 노를 제멋대로 젓습니다. '아빠 무엇하는거예요? 위로야 왜 그렇게 젓니?' 서로 소리만 높아가고 카누는 제자리를 맴돕니다. 바람은 역으로 불기 시작하고 물결은 출렁거리는데. 카누는 점점 뭍에서 멀어갑니다.
어느 정도 카누를 조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잡혔을 때, 저는 위로에게 선장직을 주었습니다. 위로가 명령하는 대로 저는 노를 저으면 됩니다. 그 방법으로 질서를 잡아 가니까 카누가 제방향을 찾아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위로는 선장노릇을 해보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카누를 자유자재로 저을 수 있는 기술을 배우니 또한 좋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순종은 아무나 하지 못합니다. 성숙한 사람이 순종합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자에 의해서 우리들이 탄 배는 목적지에 이릅니다. 하나님께 생각이 있으신 것을 인정하고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노를 저어 갈 때, 인생에 진보가 있습니다.
둘
여행 가운데 감사한 또 다른 체험이 있습니다.
P.E.I. 섬입니다. Green Gable로도 널리 알려져 있고, 우리에게 '빨강머리 앤'이란 이름으로 많이 알려진 몽고메리 여사(목사 사모)의 발자취가 흠씬 배어있었습니다. 그곳을 보기 위해서 일본과 같은 극동아시아로부터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 세계 각처에서 몰려든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이해할 만합니다.
제가 감동한 끼딝은 이 한 사람으로 인하여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그 관광수입으로 섬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 부요함을 누리고 산다는 말씀입니다.
그녀의 남편이 그녀와 부부였다는 사실만으로 복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물론, 조부모까지 복을 누렸습니다.
그녀가 살던 마을은 말할 것도 없고 섬 전체가 복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자랐던 집터까지 대접을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집터와 정원만 구경하는데 거금 $7을 지불했습니다.
아브라함 한 사람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는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이로 인하여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비록 자신은 목사 사모로서, 작가로서 적잖은 시험과 고난의 길을 가야했지만,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하나님께 올려드렸을 때, 주변의 모든 것들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셋
[산산히 부서지는 아름다움이여!]
8월 마지막 주간, 저는 캐나다 동부지역을 다녀왔습니다.
꼭 가보고 싶었던, 그래서 10여 년 동안 꿈꾸어 오던 땅이었습니다.
그곳은 캐나다의 역사가 새롭게 쓰여진 땅입니다.
대서양을 만날 수 있는 땅입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여행에 필요한 여건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특별한 사정이 아닌 한 주일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리는 것이 덕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주중에 다녀오기로 결단한 것인데, 다행히 저렴한 비행기 가격이 기다리고 있어 또한 감사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짐을 챙겨 비행기를 탔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제가 만난 감동 1호는 산들바람에 휘날리던 대서양 하얀 속옷자락, Pegy's Cove을 만난 일입니다.
Peggy's Cove는 크고 아름다운 암반을 광대하게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서있는 등대는 외롭고 쓸쓸하다기 보다는 많이 본듯한 친숙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주었습니다.
저 광대하게 밀려오는 대서양의 검푸른 파도를 온몸으로 막고 선 암반들은 무엇일 수 있을까?
그 위에 홀로 서 있는 저 등대가 과연 무엇일 수 있는가?
분명 대서양의 검푸른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파도를 타고 밀려왔습니다. 온 땅을 삼킬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대서양은 그곳에서 깨어지고 있었습니다.
온 세상을 삼킬듯이 넘실거리는 대양이 조그만 해변에서 깨어질 수 있다는 것이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광대한 바다도 모퉁이의 조그만 암반에 깨어져 창백한 은빛으로 변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하얀 물보라로 깨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보고 또 보아도 좋아보였습니다.
겸손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검푸른 바닷물도 산산히 깨어지면 저토록 아름답구나!
검푸른 바다일지라도 저토록 깨어지기만 하면 현란한 은빛이 날 수 있구나!
버림을 당하고 시험을 당하면서라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온전히 자아를 깨뜨리기만 하면 은빛이 나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작품이 될 수 있구나!
이런 생각들이 스쳐갔습니다.
천하만민을 복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려고, 십자가에서 깨어지시며 분홍빛 피를 쏟으시며 부인당하시던 주님을 생각했니다.
엘리 엘리 깨어지고 부서지시며 복의 근원이 되시던 주님이 생각났습니다.
그날 부인당하셨던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인류가 하나님께 거절당하지 않고 받아들여지게 되었는지............ .
그리고 나아가 나의 삶 속에 있을 깨어져야 할 자아가 있음을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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