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와이셔츠는 신부님들이 입는 옷!'이려니 했는데, 나도 입는 날이 왔다. S 서점에 들러 책 몇 권을 사들고 나오는 나에게 L 장로님께서 '성직자들이 입는 와이셔츠'를 선물로 주신 것이다. 성직자 티를 내는 것 같아서 아무래도 내겐 거북살스러웠다. 누구를 주면 좋을까 생각하며 몇 달을 보냈다. 그러나 성직자가 입는 옷으로 통용되는 옷이다 보니 아무나 줄 수도 없다.
어느 날 새벽, 예배 시간을 맞추려 서두르는데, 마땅히 생각나는 옷이 없다. 초를 다투던 바로 그때, 예의 그 '저 와이셔츠는 신부님들이 입는 옷!'이 눈에 들어왔다. '넥타이를 메지 않아도 되는구나. 몇 초를 절약한 기쁨으로 휘파람을 불었다.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는 분들은 대개 신앙이 좋으신 분들이니 이런 옷을 왜 입었느냐 시험받을 분들은 없겠지. 가벼운 마음으로 걸쳐 입고 나섰다. 그날 이후로, 이 와이셔츠는 새벽 기도회 때면 즐겨 입는 옷이 되었다. 이 옷은 설교단에서 나를 성직자로 선포하고 있다.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말씀을 보면서, 나에게 예수님이 생각나는 그런 옷은 없을까 생각한다. 예의 그 옷을 보면, 성직자가 생각나듯이, 예수님이 생각나는 그런 인격, 그런 신앙이 무얼까 생각한다.
자신의 소중한 신장을 떼어, 신장 기능 장애로 일생을 고통 당하던 아내에게 주고, 자신은 반쪽 신장으로 안인숙 집사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최진계 집사님의 자랑스런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그분에게서 예수님 생각나는 옷을 본다. 그런 분이 고국을 대표하는 무역관장이란 사실이 자랑스럽다.
월남 전쟁에 참여한 미군 병사가 맨발로 수십 리를 걸어 피투성이가 된 포로, 베트공군을 업어 살린 이야기를 듣는다. 그것도 자신이 탈진하기까지 고통을 감수하며 정글을 빠져 나왔다니 놀랍다. (70.33.247.150 '나누고 싶은 이야기') "네 적군들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라. 하나님께서는 너를 사랑하시는 만큼 그들도 사랑하고 계시단다"는 할아버지의 작별인사가 없더라도, 그는 충분히 예수님이 생각나는 옷을 입었다.
밤새워 계곡에서 져 나른 물로, 늘 물을 빼내가던 그 얄미운 이웃의 천수답부터 물을 먼저 채워줌으로, 가뭄 극복한 이야기를 워치만 리로부터 듣는다. 그 원수 같던 이웃이 그의 믿음에 감복하여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결과를 떠나서도 그가 입은 옷에서 예수님 생각이 난다.
두 아들을 무고히 살해한 무지한 청년을 대신 아들로 삼았다는 손양완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분이 덧입은 옷에서 원수를 사랑하라 명하셨던 예수님 생각이 생각난다.
전쟁 중이니까! 불타는 가뭄 속이니까! 우린 서로 사상이 다르니까! 건강하지 못하니까! 하면서 우리는 쉽게 그 옷을 벗어 던질 수도 있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는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옷을 입을 수 없어!" 말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전쟁 중에도, 가뭄 속에도, 사상의 극한 갈등 속에도, 변변찮은 건강 속에서도 예수님이 생각나는 옷은 있게 마련이다.
월드컵 4강 기쁨에 들뜨던 시절, 태극기를 차에 꽂고 신나게 달리던 교민이 자랑스럽지 못한 자신의 운전 솜씨 때문에 태극기를 슬며시 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웃으며, 내 마음의 옷을 들춰 본다. 하물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 있어서랴! 선교사 파송 수로 이미 세계 4강을 훌쩍 넘어 선 '대-한 민국' 기독교인에 있어서랴!
성직자가 생각나는 옷을 옷장에 넣으며, 오늘은 예수님이 생각나는 옷을 꿈꾼다. 말 한 마디, 마음 씀씀이가 헨리 나우웬의 책 제목처럼 '예수님이 생각나는 사람'이고 싶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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