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8 April 2015

다시한번 돌아 본 사랑이야기 / 노하덕칼럼


(이글은 한국일보의 종교인 칼럼 요청으로 이미 실은 글을 재편집해 보낸 것입니다)

         1. 50년 전의 내 고국은 전쟁으로 피폐한 땅이었다. 타골 정도를 제외하면 사람들은 그 나라를 노래하려 하지 않았다. 더구나 내가 태어난 지역은 전라도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곳을 문둥이들이 사는 천형의 땅이라 비웃었다. 그 전라도 중에서도 후진 대촌(大村)에서 자라났었는데, 농사꾼이 천막 치고 살았다는 농막(農幕)까지 그분은 나를 찾아 오셨다. 그 이후로  줄곧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동행하고 계신다. 고등학교 시절, 상경하여 자취할 방을 찾던 나에게 서울 도화동의 어떤 집주인은 그 한 이유만으로 그들과 한 지붕 아래 사는 걸 거부했다. 그러나 그 무시 받는 시절에도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셨다. 그분은 내가 부끄러운 죄들을 짓고 '사형!' 받아 마땅한 자인 때도, 나를 찾아오셨고, 대신 죽으셨고, 자유케 하셨다. 지금에야 내가 이해하는 사실은 나를 향한 그분의 뜨거운 가슴이다. 허물도 많고 연약하기 그지없는 나를. 한결같이 안아주신 분, 그림자처럼  나와 함께 하신 사랑 많은 아버지,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이시다.

         2. 하나님의 사랑은 척하는 사랑이 아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척하지 않았다.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하신 척하지 않았다. 제자에게 배반당하신 척하지 않았다. 백성을 위해 고난 당하신 척하지 않았다.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시는 척하지 않았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척하지 않았다. 밤새도록 기도하셨고, 치욕스럽게 맞으셨고, 가시로 만든 관을 쓰셨고, 찢긴 상처 자국에서는 피가 철철 흘렀다. 그리고 참으로 그날 죽으셨다.  그분이 나에게 주신 사랑은 척하는 사랑이 아니다.이것이 빚진 내가 그분을 위한 한 방울의 땀을 척할 수 없는 이유다
 
        3. 이 사랑을 받은 내가 집은 짓는다면 지붕은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덮었으면 한다. 형제의 과실은 기와로 덮고, 핍박하는 자는 기도로 덮었으면 싶다. 오른뺨을 때리는 자에게 왼뺨을 돌릴 수 있도록 진리의 둥근 기둥을 세우고, 어떤 염려도 내 방을 채우지 않도록 방은 그분의 나라와 그 의로 훈훈하게 채우고 싶다. 창문은 의의 태양을 향해 열고, 온갖 죄악된 욕심을랑 숨을 곳이 없을 만큼 밝은 빛을 맞아들여야지.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거실은 좀 넓어야 한다. 오리를 가자고 하는 자에게 십 리를 가 줄 수 있는 아량과 속옷을 달라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벗어 줄 수 있는 넓이로. 식탁은 대접받기보다 대접하기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덮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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