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8 April 2015
그리운 고국을 방문하고 / 노하덕칼럼
1945년의 광복절은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자유를 얻은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2003년의 8.15 광복절은 나에게도 매우 의미있는 날이었습니다.
암으로 2년 가까이 투병 중이시던 누님이 아픈 육신으로부터 자유함을 받고 천국에 입성하심을 감사하는 천국환송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토론토와 미국 뉴욕 주는 전기가 갑자기 끊겨 흑암에 빠졌고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향해 급히 떠나야 했던
저에게는 수시간의 몸부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교회 형제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서울을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습니다.
누님께서 하나님 나라로 이사를 가신 사건은 저의 경우 많은 아쉬움을 남긴 사건이었습니다.
수십년 동안 누님은 늘 저의 좋은 우산 역할을 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누님은 저의 약함을 무조건 이해해 줄 수 있는 상담자이셨습니다.
그리고 전폭적으로 저를 지지해주셨던 지지자이셨습니다.
누님은 자랑할 것이 없는 저를 자랑하며 사셨습니다.
그 영정 앞에 선 저의 가슴은 한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날 동안 다시 뵐 수 없다는 안타까움으로 저는 많은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누님이 가장 사랑하시던 말씀대로 주의 집에 영원히 거하시게 되었습니다(시편23편)
우리는 누님이 가장 즐겨 부르시던 찬송을 비문에 새겨 드렸습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죄를 다 씻어
하늘 문을 여시고
들어가게 하시네(411장)
저는 며칠 밤을 새우며 작품집을 만들어 출판사에 넘겼습니다.
그 책의 마지막에는 투병중이시던 누님께 눈물로 썼던 편지를 담아 기념이 되게 하였습니다.
2003년 8월 15일은 저의 아내의 경우, 특히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큰오빠 윤 충기 장로님께서 하나님 나라로 이사를 하신 기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서머나의 꾀꼬리 윤선희 자매의 부친이시고, 서머나의 막내 김재희 아기의 할아버지시기도 합니다.
누님보다는 하루 늦게 떠나 가셨지만
유족들과 수많은 교우들의 환송 속에서
그리고
수많은 천사들의 환영 속에서 천국에 입성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위로 중 하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돌려주신 일입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윤길수란 분입니다.
그는 제가 국문학도의 길로 가는데 큰 영향을 미친 친구이기도 합니다.
중학시절부터 문학에 눈을 뜬 그는 고서를 모으는 특이한 취미를 가졌습니다.
이곳 서울 매스컴에서도 그가 소장한 희귀본들을 대서 특필할 정도로 그 분야에 정상에 올라 있었습니다.
나를 참으로 기쁘게 했던 것은 그의 아름다운 가정과 성실하게 일구어 놓은 그의 일터였습니다.
관악산을 두 시간 동안 오르내리면서 우리는 반세기 동안 떨어져 있었던 틈을 메우기 위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학창시절, 그에게 보냈던 나의 편지들을 모아 앨범에 모아두었다가 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나를 기억하는 친구들을 한정식 집에 초대하여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섬세하게 배려를 해 주었습니다.
나를 위하여 너무 많은 시간과 물질을 사용하였습니다. 다시 난 그에게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그가 자신의 하는 일터에서 계속적인 정진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가 남은 생애에 이루고자 하는 꿈, 문학관 건립이 성취되기를 바랍니다.
그를 향한 나의 꿈, 장로가 되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그 날이 오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이번 여행에 고등학교 친했던 친구를 몇 사람 만나는 기쁨을 가졌습니다. 30년만에 만난 친구들입니다. 연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바쁜 일을 모두 제껴 두고 우선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친한 친구였으니까요.
어떻게 성숙하였을까? 몹시 궁금하였습니다.
목사 가운을 다 벗어두고 존대하는 말까지 다 내려놓고 그들을 만나러 갔습니다.
어떤 친구는 많은 고난을 거치면서 아름다운 성숙을 이루었습니다. 몇 번을 만나도 자랑스럽고 반가웠어요.
어떤 친구는 필요 이상으로 교만한 것을 보았습니다.
태평양을 건너, 보고 싶어 찾아온 친구에게 자신의 똑똑하고 위대함을 보이려고 애를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많은 성취를 하고도 얼마든지 겸손한 사람들을 보아온 저로서는 솔직히 황당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손님의 입장이니까 그냥 밥을 얻어먹기는 했지만, 옛날의 그 좋은 친구의 모습을 볼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만하지 말아야지.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높이시고 교만한 자를 낮추시는 걸 아는 저로서는 두려웠습니다.
나의 생애를 찾아오신 예수님의 능하신 손길을 생각하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리라
다짐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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