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8 April 2015

보리떡 인생론 / 노하덕칼럼


          보리떡 하면, 요즈음 사람들은 건강식품을 생각하겠지만, 6.25 전쟁 후의 가난한 시절엔 보리떡이 결코 건강식품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개나 먹는다는 개떡 정도라 할까? 아무러나 그렇고 그런 천덕구러기 떡이었다. 먹고 싶지 않은 떡이었고, 보고 싶지 않은 떡이었다. 밀로 만든 소다빵이 오히려 맛이 있었지, 보리떡은 정말 그랬다. 볼품도 없고, 맛도 없는 보리떡, 많은 사람들에게 천대받는 천덕꾸러기 떡이었다.
           그런데 그 보리떡 이야기가 성경에 나온다. 기드온 사사가 쓰임 받는 장면에서다. 겁이 많고, 의심도 많은 기드온, 집안도 별로요, 배운 것도 없는 기드온, 힘도 없고 변변한 무기하나 없는 기드온, 내노라 할 장점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아무리 보아도 그렇고 그런 기드온을 하나님께서는 보리떡으로 보여주셨다. 미디안 진영에 들어갔다가 어떤 군사의 꿈 이야기 중에 바로 기드온을 보리떡으로 말했던 것이다.

삿7:13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 동무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

못나고 맛없는 보리떡 하나가 데굴데굴 굴러 미디안 진영에 들어갔다. 그런데 놀랍게 미디안 진영이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것이 아닌가! 메뚜기처럼 많은 군사들이 보리떡 같은 기드온과 그만 그만한 300명 앞에서 산산조각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보리떡 같은 존재를 들어 귀히 쓰신 일이 많다.
           라합은 여리고 성에서 보리떡 같이 천대받던 창녀였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아 심판 아래 놓인 자신과 가족을 구원의 붉은 줄 아래 모아 생명을 구원하는 구원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다.
           룻 또한 보리떡 같은 존재였다. 이방 여인으로 남편조차 일찍 세상을 떠난 과부로 소망없는 보리떡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메시아 가문의 반열에 오르는 영광을 안게 된다. 맏며느리조차 두고 떠난 시어머니를 붙들고,
어머니가 가시는 곳에 나도 가요.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을 겁니다.
어머니의 민족이 내 민족이 되구요.
그녀는 보리떡 같이 된 시어머니를 위해 힘든 이삭줍기로 끼니를 연명했지만
하나님 나라의 가문에 편입되는 명예로운 보배가 되었다.
           도르가라는 여선지자를 두고 말하더라도 분명 보리떡 냄새가 난다.
부모도, 남편도, 자녀도 곁에 보이지 않는 보리떡 같은 과부다. 너의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있느냐 질문을 받았다면, 옷을 기울 바늘이나이다 하였을 것이다. 그녀는 보리떡 같은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손에 바쳐 버려진 고아와 과부들을 사랑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손에 들린 지팡이를 사용하신 것처럼, 보리떡 같은 도르가의 손에 있는 바늘을 사용하셨다.  죽은 보리떡을 살리셨다.
           삭개오는 그 시대의 모든 유대인이  포기한 보리떡이었다.
민족을 잃어버리고 자기조차 잃어버린 채, 자기 연민의 벽에 갇혀 살던 버림받은 자였다.
차라리 로마에 속하여, 로마에 충성하며 로마인처럼 살았다.
           주님께서는 그런 보리떡을 찾아 오셨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시던 분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그 문을 두드리셨다.
여리고의 짙은 어두움은 그를 가로막았으나
하나님은 삭개오를 위해 뽕나무를 마련해 두셨다.
삭개오는 그 나무에 올라 참 빛을 영접하였다.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고
참된 회개로 결단한 그를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드셨다.
사람들이 버린 삭개오를 아브라함의 가장 자랑스러운 자손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삭개오는 믿음으로 부자 관원이 넘지 못한 벽을 넘고
그의 금고는 세례를 받았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보듬었다.
주님은 회개한 그의 내면에서 죄를 씻으시고 병든 기능을 회복시키셨다.
믿음의 조상에게 언약하셨던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다.
주님께 속하여 주님의 법을 지키며 주님께 충성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하셨다.
보리떡 같은 삭개오를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게 되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은 말한다.
나는 키가 너무 작다고
환경이 나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나는 정말 보리떡 같은 존재라고.

그런 그에게 삭개오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만나보았느냐고.
오늘도 구원의 기회를 찾는 보리떡에게
삭개오는 외친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부자 관원조차 포기하고 돌아간
그 부의 벽을 훌쩍 넘은 삭개오를 다독이시는
주님의 말씀

인자(人子)의 온 것은 잃어버린 널 찾아 구원(救援)하려 함이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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