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나는 시편 23편이나 요한복음 10장을 읽으며 양에 대한 아름다운 상상의 그림을 그려왔었다. 그 상상이 현실과 조우하는 날이 왔다. 독일 헤센에 있는 폴하임(Pholheim), 푸른 초장에서였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내 눈앞에 꿈에도 그리던 예의 목자와 그를 따르는 양떼들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방 경작지에는 유채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푸른 벌판에는 양떼와 목자는 구름사이로 걸어가는 듯했다. 나는 설레는 가슴을 안고 그 양떼들을 향해 초장을 가로질러 자전거를 몰아갔다.
하지만 양떼 가까이 도착한 내가 느낀 첫인상은 솔직히 말하면 많이 실망스러웠다. 우선 양들의 하얀 털은 너무 더럽혀 있었다. 얼마나 똥오줌 속에서 많이 뒹굴었는가! 털에 똥이 덕지덕지 말라붙어 있었다. 냄새나고 추한 모습이었다. 진홍같이 붉은 죄를 양털같이 희게 하리라는 성경의 약속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좀 당혹스러웠다. 이뿐 아니었다. 눈앞 풀에만 너무 집착하는 모습도 탐욕스러워 보였다. 조금 앞만 보아도 얼마든지 있는 풀을 두고, 내 눈 앞에 있는 풀을 아예 뿌리까지 뜯어먹고 있는 모습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이 양을 관찰하고 지적하고 있는 대로 양은 지능이 낮음 때문인가?
이렇게 보니 양에겐 약점이 참 많다.
우선 양은 힘이 약하다. 사자 같은 힘이 필요한 약육강식의 짐승 사이에서 도무지 생존경쟁에 이길 힘이 없다.
또한 양은 시력이 약하다. 독수리나 솔개처럼 좋은 시력으로도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서, 볼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짐승이 양이다.
그렇다고 여우처럼 영리한 것도 아니다. 도대체 무슨 능력으로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만일 광야 뭇짐승들 가운데 양을 그냥 버려두면 제일 먼저 멸종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놀라운 점이 있다. 양보다 행복한 짐승이 어디 있는가? 영리한 여우, 힘센 사자나, 시력이 좋은 어떤 독수리보다 더 많이 그 종족을 번식시키며 살고 있다. 사자같은 힘이 없는데, 사자보다 더 많은 후손을 키우며 산다. 여우처럼 영리하지 못한데 여우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산다. 독수리 같은 시력을 갖지 못했는데 독수리보다 훨씬 안정된 삶을 산다. 이 행복의 비밀은 무얼까?
답은 간단하다. 목자를 잘 만나서다. 사시사철 양을 수백 마리나 몰고 다니던 그곳 목자를 만나면서 그 답은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 목자는 양의 일생을 계획 속에서 인도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새끼를 낳게 할까 부터 시작하여 죽은 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양의 일생을 꿰고 있었다. 봄은 어떤 초장으로 인도하고, 여름을 어떻게 지날 것인지, 가을에 어떤 먹이를 준비할 것인지, 겨울은 어디서 날 것인지 계획을 세우고 양을 인도하고 있었다. 아침에 어디서 꼴을 먹이고, 낮이면 어떻게 물을 먹이고, 저녁이면 어디서 잠을 재울 것인지를 이미 정해놓고 있었다. 그리고 양들은 목자가 정해 놓은 길을 가면 되었다. 양은 눈앞의 현실에만 급급해 보였지만 목자는 멀리 펼쳐진 푸른 초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가올 수 있는 위험을 알고 있었고, 오늘 겨울의 다가올 추위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양의 행복은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다. 목자를 잘 만난 때문이다.
그리고, 양은 늘 약점만 있는 게 아니다. 중요한 장점이 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리고 그 목자의 음성에 순종한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궁금했던 나는 그 목자의 허락을 받아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양이 정말 목자의 음성에만 순종할까?' 기꺼이 허락 받은 나는 목을 가다듬고 그 목자가 양떼를 모을 때 늘 하는 것처럼 '코-매!' 하고 큰 소리로 불러보았다. 그런데 참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났다. 그 목자가 부를 때는 여기저기 모여오던 양떼들이 내가 부르니 귀만 쫑긋하고 만다. 고개조차 돌리는 양이 없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안고 그 목자의 음성에 순종한다는 사실은 양이 가진 놀라운 재산이다. 여우가 영리해도 목자의 지혜를 받을 수 없다. 자기 꾀만 믿고 살다 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우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른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사자가 힘이 세어도 자기 힘만 믿고 살다 힘이 다하면 죽는다. 목자의 넉넉한 힘을 얻을 수 없다. 독수리가 아무리 눈이 좋고 빼어난 짐승이라지만 자기 눈과 발톱만 믿고 산다. 목자의 사랑을 받을 방법이 없다. 목자의 깊은 마음을 보고 헤아릴 길이 없다. 하물며 어떻게 자신의 생애를 맡길 수 있겠는가! 그러나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 그리고 순종한다. 이 듣고 순종하는 능력을 통해 양은 어느 짐승보다 윤택한 삶을 산다.
나아가 양은 자신만 유족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 삶이 이웃을 위해 유익을 끼친다. 젖을 짜서 그 우유를 공급한다. 털을 깎아 주어 털옷 재료를 공급하다. 죽을 때는 가죽과 살까지 다 내어준다.
가장 약한 짐승이 가장 유익한 삶을 살 수 있다. 이것은 양이 나에게 알려준 비밀이다. 이로 인하여 연약하고 경건치 못하고, 곧잘 죄로 더럽혀지는 양 같은 나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나의 목자이신 주님으로 인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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