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28 April 2015
성숙한 Korea / 노하덕칼럼
2003년 여름, 한국을 방문했다.
어느 가게에 수박을 사러 들어갔다.
가게 주인이 담아 주는 수박이 좀 작아 보인다. 그런데 저쪽에는 훨씬 큰 수박이 몇 덩이 놓여
있다. 얼마나 더 비싼 수박인지는 모르나, 큰 수박이 좋아보였다.
"저쪽 큰 수박 주실 수 없어요?"
"그것은 팔지 않는데요."
"왜요?"
"그 수박은 꼭지가 이미 시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수박은 그냥 줄 수는 있어도 팔
수는 없습니다."
그는 웃으면서 내가 산 수박 위에 꼭지 없는 수박 한 통을 더 얹어 주었다.
"이 수박이 더 맛있으면 어떡하지요?' 하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한국 국민성이 이렇게 많이 성숙했구나!'
달라는데 '그러세요' 주면 되는 것 아닌가?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의식 속에는 우리 한국 상인들이 이익을 얻는 일에는 곧잘 속이는 것으로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 한국 백성들이 삼각산 같은 기도원을 찾으며 가슴 치며 회개한 기도운동이 기도로 그친 것이 아니다. 이제 삶까지 변해가고 있다. '대-한민국'을 외치며 세계 4강을 향해가던 월드컵 축구 때의 그 열기의 실상을 생각했다.
우리민족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이 너무 감사하다.
불과 100여년 전, 우리 민족은 참 곤고한 처지에 있었다.
국모인 민비가 그 궁궐에서 살해를 당하는 수치를 겪었다.
대부분의 많은 백성들이 제 명에 살지 못하고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갔다.
국민의 평균 연령이 40대를 맴돌았다.
50년 전만 해도 모든 형편은 열악했다. 삶의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었다.
홍수가 오면, 예외 없이 거리는 흙탕물이 넘치고 있었고ㅡ 강에는 집이며 짐승들은 말할 것 없고 사람까지 떠내려 가고 있었다. 짚을 둥굴게 만들어서 그것도 공이라고 온 동네 쳥년들이 편을 짜서 축구를 하던 그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다.
그러나 그 불쌍한 백성을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얼마나 넉넉하게 하셨는지 모른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
고국 땅을 거닐며 저절로 감사가 나왔다. 하나님께서 우리 고민족에게 큰 축복을 주셨다.
서울 시민들은 얼마나 친절한지 모른다.
20년 전에 살던 그 서울인데, 그런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는데 의식은 많이 변했다.
낯선 손님이 되어 돌아온 나의 형편을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친절했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나는 때로는 방향을 잃었다. 버스비가 얼마인지, 얼마를 주고 전화를 사용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그러나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바쁜 사람을 붙들고 물어보면 되었다. 묻는 말에 어느 한 사람 불친절한 사람이 없었다. 비행기 승무원들도 그렇게 여유가 있고 친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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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고국에 가면 양화진에 가 보리라 벼르던 차에 저는 이번 여행에서 양화진을 방문할
수 있었다.
내 민족을 위해 복음을 전해 준 선교사님들이 잠들어 있는 그 동산이 그리웠다.
언더우드 아펜셀러 제임스 홀 선교사님 등의 묘비를 지나면서 감회가 컸다.
이분들은 당시 미국 대통령을 해도 잘 해낼 수 있었던 빼어난 인격과 신앙을 갖추신 분들이
었다. 하나님께서 그런 귀한 분들을 우리나라에 보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해 주셨다.
하나님의 긍휼이 얼마나 컸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신 예다.
내가 가진 약점 중 한 가지는 약한 것을 견딜 수 없어하는 일이 하나요, 진중히 기다리는
일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약할 때 강할 수 있는데, 좀더 기다렸더라면 될텐데 말이
다. 자꾸만 강해지려다, 조급함으로 일을 서두르다 실패한 적이 많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이 약하고 기다리기 힘들어 하는 우리 민족이 복음 안에서 꽃피울 오늘
을 위해 5천년이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우리 민족을 찾아 오셔서 크고 아름다운 일을 행하신 우리 하나님께서 북한도 찾아가시고
저들에게도 은혜 베푸실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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