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2 February 2020

로마서 2:1-16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
 
 
[들어가는 말]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헤엄을 쳐가는 백조를 보면, 별로 힘이 들여보이지를 않습니다. 물에 뜨도록 신체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겨울이 와도 오리는 춥지 않고, 물 위에 있어도 백조는 가라앉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인간은 다릅니다.
 
죄 아래 있는 모든 인간은 죄를 짓도록 되어 있습니다. 어두움의 권세가 그런 나쁜 프로그램을 깔아버렸습니다.
 
로마서 1장 후반부에서 보았던, 그 망가져 있는 인생의 추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데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데 감사치도 않는 삶입니다.
죄와 허물로 패역하게 된 영혼이 망가져버린 모습입니다.
그래서 '사형!'이라는 형을 받고, 지옥에 버려질 인간의 운명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아는 유대인이나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이나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2, 6, 11).
이방인은 율법을 몰랐다고 처벌에서 면제받을 수 없고(12),
유대인은 그 아는 것을 행하지 않았으니
형벌을 피할 수 없습니다(9).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율법이 구원의 보증이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며, 자신들은 이방인과 달리 하나님의 진노를 피해갈 것이라 확신합니다(3, 4, 5).
 
그들은 율법으로 자신을 변화시키기보다, 율법으로 다른 이를 정죄하는 일에만 열심을 냈습니다(1).
 
하지만 진리를 아는 것이 의가 아니요, 진리대로 사는 게 의입니다(13). 만약 유대인이 율법대로 살지 않는다면, 율법은 몰라도 양심껏 선을 행하는 이방인보다 나을 게 없습니다(14).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마지막 심판 때에 하나님 앞에서 그 순종과 불순종의 여부에 따라 정의로운 판결을 받게 될 것입니다(16).
 
그러면 우리는 영원히 '사형수'로서 살아야 합니까?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섰다 자부하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에게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1. 율법은 남을 판단하라는 법이 아닙니다.(진리)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2:1)
 
섰다 하는 사람이 갖는 공통점은 서지 못한 자에 대한 판단입니다.
누군가를 판단한다는 것은 그만큼 내놓을 만한 무엇이 있다는 섰다하는 사람입니다.
남을 판단하는 하는 것을 보면, 그래도 나는 이만큼 섰다하는 의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내놓을 만한 무엇이 있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든, 헬라인들이든 자신들에게 무엇인가 우월한 무엇이 있을 때, 사람들이 하는 행위는 남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삶의 모습이 남보다 우월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우월한 어떤 모습 때문에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판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생활을 본이 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 귀하지요. 그런데 그런 사람 가운데 어떤 분들은 본이 되지 않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판단합니다.
 
생각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들의 생각이 좀 뛰어나기 때문에 생각이 부족한 사람들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들은 그런 자신의 우월한 삶의 한 양태 때문에 부도덕한 사람을 판단하는 겨우가 많습니다.
 
지각이 뛰어난 사람은 몰지각한 사람을 판단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것이 옳지 않다 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2:1)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3:6-8]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나의 우월한 무엇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지 말고, 열등한 이웃을 섬기는 것이 진리입니다.
 
언어생활을 덕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참 귀하지요. 그런 사람들은 부덕한 언어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판단하지 말고 그 덕스러운 언어생활로 섬기세요. 그것이 진리입니다.
사상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있습니까? 무뇌인간처럼 생각없이 사는 사람들을 섬기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까? 자신의 우월한 도덕성을 감사하시고, 부도덕한 사람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지각이 상대적으로 뛰어나신 분이 계십니까? 그 귀한 지각으로 몰지각한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섬기시기 바랍니다.
 
조엘 오스틴의 책에 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나눠주는 삶만큼 하나님을 닮는 모습은 없다.
남을 돕는 마음은 곧 하나님의 마음이다.
남에게 최선을 이끌어내는 인간 경영을 실천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당신에게서 최선을 이끌어 내실 것이다.
우리 사회는 비판과 냉소와 흠잡기로 한없이 어두워져 있다. 누군가의 하루를 행복하게 해주면 하나님이 갑절의 행복으로 돌려주신다."
 
친구의 잘못을 손가락질하고 싶은 손으로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짚어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진리대로 살아서 하나님의 축복을 계속적으로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섰다하는 자가 붙들어야 할 지혜가 무엇입니까?
 
 
 
2. 율법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의지하라는 법입니다(사랑)
 
[3: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하나님께서 얼마나 인자하시고 용납하시고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아십니까?
하나님 백성들이 결사적으로 붙들어야 할 내용은 자기 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은 정말 풍성하십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향한 예수님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은 정말 풍성하십니다.
 
삭개오의 집을 찾아가신 예수님을 아시지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은 정말 풍성하십니다.
 
수가성 여인이 어떻게 그런 놀라운 변화를 이룹니까?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은 정말 풍성하십니다.
 
어떻게 시몬이 베드로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은 정말 풍성하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만난 사람들의 삶과 인격 속에 바로 그런 성품이 자리잡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모르고 살아가는 마음을 아프게 세상 모습이 인터넷 신문에 실려 있어요.
 
"무슬렘 아비가 사춘기 딸을 목졸라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히잡(hijab; 머리에서 어깨까지 둘러 쓰는 스카프) 쓰고 다니기를 거부하는 딸과 다투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2005년도던가?
1210일 오전 8, 미시사가의 한 가정, 911에 전화를 걸어 아비는 자신이 딸을 죽였다고 했고, 긴급 출동한 구호반은 목이 졸린 채 쓰러져 있는 딸을 인공호흡으로 살려내 병원으로 옮겼으나 그날 저녁 소녀는 끝내 죽고 말았다.
57세의 택시기사인 무하마드 파르베즈(Muhammad Parvez)2급 살인죄가 적용되 현재 재판 중이다. 피해자의 오빠인 26살 와콰스 파르베즈(Waqas Parvez)도 공무집행 방해죄를 적용 받아 함께 경찰 조사 중이다.
죽은 아크사 파르베즈(Aqsa Parvez)16살 고등학생으로 최근 보수적 이슬람교도인 아버지와 갈등이 심해 집을 나온 상태였다고 한다.
다민족/다인종/다문화를 지향하는 캐나다에서 일어난 이 가정 비극은 토론토를 큰 충격에 빠트렸다. 구세대와 신세대 간의 갈등으로 봐야 하는가? 지나친 종교적 관습에 따른 억압으로 봐야하는가? 아니면 그저 흔한 가정폭력의 또 다른 희생양으로 봐야하는가?
 
하나님 아버지의 인자하심을 모르는 한 남성의 서글픈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만난 삶과 인격이 자리잡을 때 그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미국의 유수한 대학 총장직을 내어놓고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수발하는 총장님께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무슨 소용입니까? 사모님께서는 총장님을 알아보지도 못하시는데요."
 
총장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내는 저를 몰라봐도 저는 아내를 똑똑히 알아봅니다."
 
참 아름답지요?
하나님의 이런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우리 삶 속에서도 꽃피우실 수 있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은 정말 풍성하십니다.
이를 누리고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에 인생의 배를 태우고 살아가는 사람은 정말 행복합니다.
 
 
예금과 인출 이론, 들어보셨습니까?
남을 판단하는 것보다 훨씬 유익한 말입니다.
내용의 요지인즉 이렇습니다.
 
"모든 사람과 나 사이에는 계좌 거래가 이루어진다.
인정하고,
친절하고,
칭찬하고,
사랑하고,
들어주고,
흠을 모른 채 넘어가주고,
용서해주고,
유쾌하게 사람을 대할 때마다 예금이 척척 쌓인다.
 
이기적이고,
자기 만 생각하고,
본체만체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고,
감사가 없고,
수근거리고
교만할 때 예금이 빠져 나간다.
 
우리가 지난 주에 묵상한 말씀이 무엇입니까?
 
29 불의가 가득합니다.
추악합니다.
탐욕이 가득 차 있습니다.
악의가 가득 차 있습니다.
사회면마다 살인이 가득 차 있습니다.
나라와 공동체간에 분쟁이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사기가 가득 차 있습니다.
악독이 가득합니다.
모이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수군수군이 가득爛求?
30 비방이 가득합니다.
능욕이 가득 차 있습니다.
사람마다 교만이 가득 차 있습니다.
입만 열면 그 안에 자기 자랑이 가득 차 있습니다.
마음 속에는 악을 도모함이 가득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거역함이 가득 차 있습니다.
31 背約이 가득 차 있습니다.
무정함이 가득 차 있습니다.
무자비함이 가득 차 있습니다.
32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합니다.
26 부끄러운 욕심 속에 빠져 삽니다.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씁니다.
27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합니다.
32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합니다.
 
이런 일이 모두 계좌를 마이너스 계좌로 만드는 짓입니다.
 
저자는 묻습니다.
 
당신의 관계 계좌는? 관계에 투자하여 신뢰를 쌓는 일이 언제나 우선이다. 다른 사람들의 삶 속을 지날 때마다 긍정적인 예금을 하라.
 
훈계나 건설적인 비판을 하려면 상대방의 계좌에 잔액이 충분히 쌓여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최근에 예금도 하지 않고서 왜 인출을 하려고 하세요? 잔고는 진작 텅텅 비었다구요."
 
격려는 사람의 마음을 연다. 민감한 이야기를 꺼낼 때는 언제나 긍정적인 이야기로 시작해야 한다. 긍정적인 말로 시작하면 상대는 방어자세를 풀고 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음전하를 상쇄하려면 다섯 배의 양전하가 필요하다. 잘못하나를 지적하려면 다섯 번의 칭찬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런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우리 삶 속에서도 꽃피우실 수 있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다 갚으시는 분이십니다.
단지 아무 탈 없이 지내는 것은 하나님이 계속해서 참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돌이키지 않고 계속 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입니다.
 
 
 
 
3.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선을 행하라는 법입니다.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저에게는 소형 전자 수첩이 있습니다.
성경과 찬송 프로그램을 깔도록 했습니다. 성경 찬송을 자유롭게 펼쳐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자유롭게 보기 힘든 선교지에 다닐 때도, 이 소형 컴퓨터만 가지고 가면 됩니다. 깜깜한 곳을 갈 때도 이 소형전자수첩은 불이 들어오기 때문에 펴서 읽으면 됩니다.
우리 장로님들이 저를 이스라엘 여행을 하도록 배려해 주었을 때, 저는 이 소형전자수첩을 가지고 갔습니다. 베들레헴 기념 교회에 들어가서 저는 이 수첩을 펴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나사렛 기념 교회에 새벽 3시경에 방문했는데 불편 없이 수첩을 켜고 성경을 펴서 읽었습니다.
중국에 갔을 때도 저는 이 수첩을 사용하여 예배를 많이 드렸습니다.
제가 이 수첩 선전을 하려는 것이 아님을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을 행하는 능력을 각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분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음을 믿으십니까? 그분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신 것을 믿으십니까? 그분을 내 삶에 주인으로 영접하셨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감사할 수 있는 기능이 깔려 있습니다.
그 기능을 사용하십시오. 그러면 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셨습니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많이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제 핸드폰에는 찬송과 성경 통독이 들어 있습니다. 틀기만 하면 나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깔아놓으신 놀라운 선행의 프로그램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남편이 사준 차를 타고 가다 사고를 범했습니다. 그녀는 당황하다 보험증서를 겨우 꺼냈습니다. 그 안에는 이런 쪽지가 적혀 있었습니다.
 
"여보! 혹시 사고가 나더라도 걱정하지 말아요. 나는 차가 아닌 당신을 사랑해요."(아내가 교통사고 후, 열어본 자동차 보험증 속의 남편 편지)
 
 
[마무리하는 말]
 
선행의 씨앗을 의지로 일부러 뿌려야 합니다.
농사를 지어보세요.
그냥두면 잡초만 무성합니다.
좋은 곡식은 반드시 의지와 땀을 흘려서 씨를 뿌려야 합니다.
 
어떤 레스토랑에서 너무나 불친절한 서비스를 받은 후, 그 레스토랑을 나오면서 조엘 오스틴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 직원에게 팁을 주는게 아니라 그 삶 속에 씨앗을 뿌리는 거야."
 
$30 식사에 $20 팁을 남겼습니다. 얼마후 그 웨이터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저를 기억하세요. 최악의 써비스를 받으실 때 음식을 나른 여자입니다."
편지를 읽던 그는 속으로 외쳤습니다.
 
'알다마다.'
 
그러나 이어진 그녀의 편지 내용은 감동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사연인즉 이랬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 주일마다 교회에 나갔다. 그러나 교회 리더로부터 상처를 입고 교회를 완전히 떠났다. 그런데 목사님 부부가 식당에 들어왔다. 뒤죽박죽 주문에 응했다. 그 목사님 부부는 화를 내며 자리를 떠나갈 수밖에 없는 짜증스런 상황이었다. 그러나 화도 짜증도 없이 오히려 많은 팁까지 남기고 떠나는 것이 아닌가!.
집에 돌아온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그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 그 목사님의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그 가족은 모두 제 위치로 돌아오게 되었다.
 
 
[설교본문]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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