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31 March 2015

(부활)마28장 復活과 성도의 사명

[들어가는 말]

   일제 시대에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전한 최권능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분이 전하는 메시지는 오로지 “예수 천당!”이었습니다. 하루는 일본 경찰이 길을 지나가는데 목사님이 큰 소리로 “예수 천당”이라고 외쳤다가 경찰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기에 이상한 소리를 외치고 다니는 거요?”라고 일본 경찰이 묻자, 목사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다시 “예수 천당”이라고 외쳤답니다.
그러자 일본 경찰이 약간의 호기심이 담긴 어투로 목사님께 이렇게 물었답니다.
“당신은 예수 천당이라고만 외치는데, 진짜 천당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오? 만일 있다면 예수를 보여주던지 천당을 보여 주던지 하시오?”
그 때 목사님은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답니다.
“지금 당장 천당 본점은 보여 줄 수 없어도 천당 지점은 언제든지 보여줄 수 있소. 바로 내 마음이 천당 지점이라오.”(이동원목사님이 모은 예화집에서)


예수님은 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명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천국 백성의 삶을 오늘 이땅에서도 누리게 하시는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오늘은 특히 천당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부활의 의미를 함께 나눌 수 있기 바랍니다.


   1. 예수님께서  천당을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미국 한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렸답니다.

  “우리는 돈으로 어디든지 다 갈 수 있다. 다만 천국을 빼놓고는."

   세상에서 가진 것이 많으나 천국을  찾지 못한 사람에게는 깊이 생각하게 하는 기사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독교인 가운데서도 천당을 현재 속에서 누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인 한 사람이 어느 날, 토레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상담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저는 집회에 많이 참석하고, 기도도 많이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실감나지 않습니다. 구원받았다는 사실도 실감나지 않는데 왜 그럴까요?”

  이 말을 듣고 있던 토레이 목사님은 고민하는 이 부인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

   부인, 오늘부터 집에 가서 다른 기도는 하지 말고 이 한 가지 기도만 계속하십시오. 하나님께 부인 자신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한 주간만 계속 기도하십시오.”

그래서 목사님의 충고에 따라 이 부인은 집에 돌아가 이 기도만을 계속해서 했습니다.

   "하나님, 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 주십시오.”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모습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추하고 불결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더러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마침내 부인은 자기의 죄악을 보며 절망한 채 일 주일만에 토레이 목사님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이제는 죽고 싶습니다”

   "이제부터는 십자가를 보여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이 부인은 집에 다시 돌아가 두 번째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보여 주십시오.”

   그때야 이 부인은 십자가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내 자신이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완전히 포기하고 절망을 선언했을 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그 분을 통해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심으로써 나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셨으며 그로 인해 깨끗하게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 8

   천국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녀의 마음 가운데 임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이루어지기를 소원하십니까?
   나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죄인인가를 인정하십시오. 내 안에 하나님을 만족시킬 만한 의가 없음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의 죄와 부족함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사랑, 외아들까지 내어주신 사랑을 생각하십시오.



   2.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믿음이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초자연성에 의문을 제기하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저들의 특징은 기독교에서 기적과 같은 초자연성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갖가지 노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분명히 선포하는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죽은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1]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그 현장의 증인이었습니다.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정말 예수님께서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와 요한까지 허겁지겁 달려와 보았지만 이미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고 모함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것은 터무니 없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계시지 않고 다시 살아나신 사건을 가장 믿지 못한 사람들이 제자들이었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 자신의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고 큰소리쳤습니다.

   2] 예수님의 열 한 제자들도 그 증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을 찾아가 만나셨습니다.
고기잡으러 간 디베랴 바다까지 찾아가서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그리고 그들에게 평강이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손가락을 손과 옆구리에 넣어보고 부활하셨음을 믿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 부활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라고 선포하신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부활하심으로 부활이심을 만천하에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눅 24장에는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2000년 전에 살아나셨습니다.

    이 부활의 주님을 믿는 우리에게 오늘도 천국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할렐루야!



   3. 부활의 증인들을 사명자로 세우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왜 찾아오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음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끼?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나아가 살아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알려 주시고, 제자들이 받은 그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1] 모든 족속으로 제자삼게 하셨습니다.
   2] 모든 족속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알리도록 하셨습니다.

   모든 족속으로 하나님 가문에 들어오는 길을 열게 하셨습니다.
그들로 인하여 천하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 일은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이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셔서 완성시키신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있어서 너무 소중한 일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계승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두 가지 약속을 말씀해주셨습니다.

1] 이 일을 감당하도록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다."
2] 제자들이 이 사명을 감당하도록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늘 함께 하신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면 동시에 이 두 가지 권능을 체험합니다.

   크고 작은 일상사에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심을 체험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지 사흘만에 다시 살리셨다.
다시 사신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신다.
이는 참으로 기쁘고 힘이 되는 복음입니다.

   밴 다이크(Van Dike)는 이러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로마의 어떤 부자가 천국에 갔는데 한 천사의 안내를 받아서 천국의 이곳 저곳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천국을 구경하던 중 매우 아름다운 집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집은 아주 근사하고 멋있는 집이었습니다. 부자는 부러움의 말투로 “도대체, 이 아름다운 집의 주인은 누구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그 집은 당신이 종으로 부렸던 사람의 집이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깜짝 놀란 부자는 당황하며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그 사람이 천국에서 이런 멋진 집을 소유 할 수 있습니까?”라고 천사에게 불평했습니다. 그의 불평에 천사는 태연하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천국에는 실수가 없고 오류가 있을 수 없는 곳입니다. 우리는 땅에서 그가 보낸 재료로 이 집을 지었을 뿐입니다.”
천사의 단호한 대답에 더 이상 우길 수 없었던 부자는 천국의 다른 장소로 한참을 가게 되었습니다. 더 가다보니 이번에는 너무나 낡고 허술한 집 한 채가 보였습니다. 부자는 천국에도 이런 초라한 집이 있는가 의아하게 생각되어 “도대체 저 집은 누구의 집이요?”라고 천사에게 또 물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놀랍게도 “당신 집이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더럽고 누추한 집이 내 집일 수 있습니까?”
“천국에는 절대 오류가 없습니다. 실수도 없습니다. 착각도 전혀 없습니다. 이 집은 당신이 세상을 살면서 보낸 재료로 지어진 집입니다.”
지금 우리의 물질은 무엇을 위해서, 어떤 일에 쓰여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이 이야기 가운데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우리가 부자로 살든 가난하게 살든, 주인으로 살든 종으로 살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얼마나 잘 감당하였는가 하는 점입니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는 약속은 이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부활주일 설교 본문]

마28장

1 안식일이 다하여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2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4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5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쌔
9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11 여자들이 갈제 파숫군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12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13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하여 갔다 하라
14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되지 않게 하리라 하니
15 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16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첨가하는 말]

   이것도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한 것입니까?


   1] 아주 작은 체험을 한번 나누어 볼까요?

   금요일 밤의 성금요일 예배 감동이 가시기 전에 저는 새벽 기도 준비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다음날 새벽이 4월초 새벽 기도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늦은 밤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일어나보니 5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그러나  늦지 않은 것만도 감사하면서 운전대 앞에 섰습니다. 교회에 오는 동안 8개의 신호등을 만나는데요. 지켜야 할 모든 신호등은 파랗게 켜 있었습니다.

   교회에 도착해서 예배를 준비할 여유를 그렇게 허락하셨습니다. 어떤 때는 연거푸 빨간 신호등을 만나기도 한데, 그렇지는 않더라도 한두 개 정도는 빨간신호등을 만날 만 한데, 파란 신호등을 연거푸 지나오게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제 곁에 살아계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다시 한 번 감사올렸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손길은 이런 사소한 일에서부터 생활 전반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할 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까지... '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우리 생활 전반에서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특히 사명자의 생활의 전반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도우십니다.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사명자들은 이런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동하는 때가 많습니다.

   수없는 고난을 겪으면서 아프리카 선교사역을 감당한 리빙스턴이 글라스고우 대학 대강당에서

   "세상 끝날까지 내가 항상 너와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신 주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셨노라고 간증한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명을 찾아 죽도록 충성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부활)롬6:1-5 예수님의 부활과 새사람

성경본문]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들어가는 말]


  1. 죄는 우리 인생을 녹슬게 합니다.

  며칠 전, 달러 샵에 가서 면도기를 하나 샀습니다. 그런데 이게 효과가 없습니다. 제대로 깎이지도 않더니 마침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입니다.
  이걸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습니다.

  우리집에는 자전거가 하나 있습니다. 지난 겨울 동안 우리는 이 자전거를 둘 곳이 마땅치 않아서 밖에 두었습니다.
이 자전거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온통 녹이 슬었습니다.
봄이 오면 이것을 버려야 할지 모릅니다.

  죄의 세력 아래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이 이처럼 무력한 존재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형상대로 만드셨는데 우리는 죄 아래서 무기력하게 부러지고 맙니다. 녹슨 자전거처럼, 불량품 면도기처럼 말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면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합니까?

  2.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스페인의 유명한 화가 피카소의 "황소머리"란 작품이 있습니다. 최근에 런던의 한 경매장 미공개 작품이 약 3천말 불($29,300,000)에 팔린 것을 보면 이 작품의 값어치는 엄청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1943년 길을 가던 피카소가 우연히 버려진 자전거 한 대를 발견하고는 그 자전거에서 안장과 핸들을 떼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안장에다가 핸들을 거꾸로 붙였습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버려진 자전거 안장에 손잡이, 그리고 그 이름을 '황소머리' 라고 붙인 것입니다.

  재료값은 그냥 없어보이는 것인데, 피카소의 생각이 들어가니 이처럼 엄청난 값을 호가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피카소의 "황소머리" - 293억원 짜리

  예수님께서는 2천년 전, 오늘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제자들의 삶을 움직이기 시작하셨습니다.
2천 년간 줄기차가 찾아오셔서 작품을 만드셨습니다.

고물자전거와 같던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놀라운 작품으로 세상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5절]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부활하신 예수님께 연합한 사람이 되면 우리의 진가가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꿈이 우리 안에서 살아 역사합니다.


  3. 부활의 주님을 모시고 새 생명 가운데 성장해야 합니다.

  박수근 화백의 ‘귀로’(사진)가 18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65만 7000달러에 낙찰됐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알아보는 애호가가 발견하기 전까지 그 그림은 20달러에 거래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그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의 손에 들려졌을 때 그 값은 올라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셔들이면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는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이 쓰시도록 나를 내어놓으십시다.

시간과 육신과 물질을 하나님이 쓰시도록 합시다.

  지혜로운 농부는 썩은 가지, 열매없는 가지를 잘라버립니다. 그리고, 그 곳에 건강한 가지, 좋은 열매맺는 가지를 접목시킵니다.
봄이 오면 새로운 움이 돋고 꽃이 피고 그곳에 좋은 열매가 맺히지요.

  우리가 죄악된 세상에서 무가치하게 버려질지라도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들려지면 우리도 의미있는 존재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열매 없는 삶은 전지되고 그곳에 하나님을 향해 산 인생을 접목시킨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입니다.

  사명이 다시 살아납니다.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마28장의 지상명령을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행20:24 사명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절기설교 / 부활절

고전15: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Saturday, 28 March 2015

(죽으심) 눅19:28-44 회복할 보배

[들어가는 말]

오늘 종려주일에 우리가 만나게 될 예수님은 분명 왕이십니다. 그러나 천국의 왕이십니다.
유대인들이 세계 각국에서 유월절을 지내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속속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엘리야와 같은 능력으로 불병거를 타고 오실 왕(메시야)을 기다렸습니다. 그분은 로마를 일시에 뒤엎을 것이고, 압제 당하는 이스라엘은 로마로부터 독립하게 될 것입니다.
왕으로 오실 그날을 위해 충성(장사)할 것을 제자들에게 부탁하셨던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나귀를 타신 메시야로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앞에 서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왕으로 오셔서 다스리실때,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회복되는 것이 있습니다.

1. 평강과 겸손입니다.

예수님은 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까요?

유독 그날 다리가 아프셔서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사람들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다 위세를 부리자고 나귀를 타신 것도 아닙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나귀를 타고 가시는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 왕의 모습을 우리들과 예루살렘 성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는 이스라엘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그림처럼 전하는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이시기 때문에 평화의 왕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말은 전쟁을 상징하고 나귀는 평화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겸손의 왕이시기 겸손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나귀는 서민들의 교통수단입니다. 솔로몬 시대 이후로 어떤 왕도 나귀를 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귀 중에서도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겸손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멍애를 매고 겸손을 배우시기 원하십니다.

나귀를 타고 오셨던 평화의 왕이요, 겸손의 왕을 영접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이 평강의 왕, 겸손의 왕이 오늘 본문에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두 가지를 행하십니다.
평안이 찾아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입니다. 평강의 왕이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겸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교만한 자가 겸손해 집니다. 겸손의 왕이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그가 주님을 등에 모시고 세상에 나아갈 때, 세상에 평강과 겸손의 왕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화] 고구마전도왕 김기동집사 : 교통사고와 전도
하나님께서 믿도록 예비하신 사람을 오늘도 만나게 하소서.
꽝!
미안합니다.
범퍼는 받으라고 있는 겁니다.
고치고 청구하십시오
점심이나 한번 사세요.
예수님 믿고, 흔들리는 회사를 살려준 결과로 나타남

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왕으로 오셔서 다스리실때,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회복되는 것이 있습니다.

2. 자유함과 사명입니다.
'풀어 끌고 오너라' - '주가 쓰시겠다'


(30)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31)만일(萬一) 누가 너희에게 어찌하여 푸느냐 묻거든 이렇게 말하되 주(主)가 쓰시겠다 하라 하시매

여기 아직 어린 나귀 한 마리가 매어 있습니다. 이 어린 나귀의 운명은 세상 주인에게 매여 일생 종노릇하다가 힘이 다하면 죽는 겁니다.

예화]
미국 어느 도시에 밥 먹는 일 외엔 잠만 자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물도 끼얹고 별 수단을 다해 보아도 대책이 없었습니다.
어느날 아침, 신문을 보던 이 청년이 어머니에게 일좀 하겠다고 일어서는 것이었습니다. 농담으로 생각한 어머니는 건성으로 대답했대요. "그럼 너도 일좀 해야지." 그런데 그날 밤 자정이 다 되어서 돌아온 겁니다. 그 이유를 물은즉, 침대회사의 모델로 취직하였답니다. 침대를 선전하기 위해서 가장 오래 누워 있을 수 있는 모델로 시간당 $3에 당당 합격을 했데요.

잠에 매여 일생을 살아갈 그 아들을 생각할 때, 그 어머니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통곡하고 싶지 않겠어요?
우리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보시며 우시는 이유가 그렇습니다. 심판 받을 날은 가까운데, 사명을 망각하고 죄악 가운데 잠들어 있는 그 예루살렘과 그 백성들이 불쌍해서 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어린 나귀는 오늘 예수님의 부르심을 입고 왕 중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싣고 예루살렘에 당당히 들어갑니다. 많은 사람들의 환호 속에 온 우주의 왕이신 메시야를 등에 모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맞은 편 마을에 매어있는 어린 나귀를 끌어오게 하여 자유케 하시고 왕 중 왕의 나귀로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많이 만납니다.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옛사람에 속한 본토, 친척 아비 집에 매여 있었습니다. 우상 장사(돈)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매임에서 풀어 복의 근원을 삼으셨습니다. 천하만민이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젊은 날에 미디안으로 피한 후, 바로에 대한 두려움에 매여 있었습니다. 모세는 거듭 "내가 누구관대!" 합니다. 말이 능하지 못하고 입도 뻣뻣합니다. 자기는 아무래도 그런 사명을 감당할 인물이 못됩니다.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매임에서 풀어 바로에게 보내어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여 내게 하셨습니다.
에스더는 왕비였지만, 왕의 사랑을 잃어버리는 두려움에 매여 떨고 있었습니다. 사망의 그늘이 그 민족을 덮고 있었으므로 그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죽음의 권세도 그녀 가까운 곳에서 조여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모르드개를 통하여 믿음을 회복하게 되었을 때, 규례를 어기고 왕께 나갈 수 있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민족을 구하는 일에 쓰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더욱 왕께 사랑을 받는 복도 누렸습니다.
기드온은 당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하였듯이 미디안을 피하여 산의 굴에서 추수를 몰래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추수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토지 소산뿐만 아니라 소, 양들을 약탈해갔습니다.
그러나 의심하는 마음(懷疑)에 매여 굴속에서 떨고 있는 기드온을 불러내어 하나님께서는 미디안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정말 귀히 쓰시고 싶으셨습니다. 그러나 교만에 매이고, 사람에 매이고, 자기 영광(기념비)에 매이고, 불순종의 죄에 매인 사울을 하나님께선 사용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다윗은 골리앗(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라."

다윗도 매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매였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자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도전]
과거에 매여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에 매여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옛사람에 매여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아에 매여 종노릇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육신을 사랑하여 종노릇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풀어 끌고 오너라' - '주가 쓰시겠다'
일생을 매여 종노릇하며 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죄와 사망의 권세, 그리고 세상의 종노릇하는 데서 자유하길 원하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십니다. 자유인으로 주님을 나타내는 사명을 회복하길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쓰시겠다고 하셨을 때, 그들은 흔쾌히 허락한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은 잘 이해가 되십니까? 예수님께서 원하시면 무엇이든이 사용하시도록 내어 놓을 수 있는 그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왕으로 오셔서 다스리실때, 우리에게 필연적으로 회복되는 것이 있습니다.

3. 기쁨과 찬양의 회복입니다.

(37)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弟子)의 온 무리가 자기(自己)의 본바 모든 능한 일을 인(因)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讚揚)하여 (38)가로되 찬송(讚頌)하리로다 주(主)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王)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榮光)이로다 하니

사랑을 받고, 은혜를 입을 때, 우리는 사랑한 사람과 은혜를 베푼 사람을 생각하면 기쁩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오늘 오산나를 부르면서 기뻐하고 찬양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사랑을 받고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셨을 때, 살아난 나사로는 말할 것도 없고, 베다니에 사는 마르다와 마리아가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들은 마음껏 주님을 외쳤을 것입니다.

찬송(讚頌)하리로다 주(主)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王)이여

마리아가 값진 향유를 주님의 발에 붓는 사건으로 그 지역 주민들의 정서를 읽을 수 있습니다.그들의 중심에는 감사와 찬양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여리고에서 눈을 뜬 바디매오와 그 친족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들은 마음껏 주님을 외쳤을 것입니다.

찬송(讚頌)하리로다 주(主)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王)이여

여리고에 살던 삭개오와 그 주변사람들이 얼마나 기뻤을까요? 예수님을 만나 변하여 복의 근원을 회복하였을 때, 그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였을까요?

찬송(讚頌)하리로다 주(主)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王)이여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행하신 구원을 체험한 데서 나오는 찬양이었습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은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얼음이 되는 추운 감옥에 갇혀 지냈습니다. 옷을 다 벗겨 그곳에 가두었습니다. 믿음대로 살고자 하는 그분이 이초록 고통을 당하면서 어떻게 그 추운 밤을 보냈는지 아시겠습니까? 밤 새워 춤을 추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행하신 크고 비밀하신 사랑을 춤으로 보답했습니다.

점검과 도전]

마무리하는 말

왜 사람들이 기쁨이 없고 감사가 없을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몰라서가 아닙니까?

예화] 몰라도 너무 몰라!

아들 위로가 한국을 방문한 때는 재작년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잊지 못하는 것이 있다.
아니 그 감격이 더 생생해지는 일이 있다.
친척들을 방문하는 중에 상당히 많은 돈, 9만 6천 원을 선물로 받은 사건이다.
위로가 고모를 가장 좋은 분이라고 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고모가 가장 많은 돈을 주었다는 것도 한몫을 하고 있다.
6-만원을 주셨다고 지금도 그때의 감격을 톤을 높여 표현한다.
그런데 이 감격스런 돈을 위로 엄마가 빌려쓰고 아직 돌려주지 않은 모양이다.
위로는 돈을 사용하고 싶을 때면, 늘 그가 엄마에게 빌려주었다는 9만 6천 원을 생각한다.
목이 말라 무엇을 마시고 싶을 때, 그가 엄마에게 빌려주었다는 9만 6천 원을 생각한다.
배가 출출하고 무엇인가 먹고 싶을 때, 그가 엄마에게 빌려주었다는 9만 6천 원을 생각한다.
장난감이 사고 싶을 때, 그가 엄마에게 빌려주었다는 9만 6천 원을 생각한다.

어제 밤에는 좀 도가 지나치다 싶어서 한 마디를 물었다.
위로야, 네가 하룻밤을 자는데 얼마나 돈이 들까?
난 그에게 깨우쳐주고 싶었다.
엄마가 그를 위해 방을 마련해주고, 맛있는 음식을 정성껏 마련해 주고, 옷을 따뜻이 입혀주고 사랑으로 돌봐주는 것에 비하면, 네가 빌려주었다는 9만 6천 원을 아무 것도 아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위로는 깜짝 놀랄 만한 답을 말했다.
"1센트?"
초등학교 5학년인데! 그래도 산수 점수, 특히 계산에서만은 몇 학기 째 꼬박꼬박 A를 받아오는 녀석이 자기가 하룻밤 묵는 값이 $1의 1/100인 1센트라니!
'아빠의 의중을 알고 넘겨짚어 답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의 얼굴 표정은 진심으로 답하고 있어 보였다.

참으로 어안이 벙벙한 이 사건을 기회로 나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나 역시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외아들을 내 죄 대신 내어주심으로 나는 오늘도 영생을 누리며 살고 있다.
매일 매순간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은혜가 또한 값으로 헤아릴 길이 없다.
1초를 지체하지 않고 공급해 주시는 이 맑은 공기를 50년째 무상으로 받아 마시며 산다.
때를 따라 일용할 양식을 풍성히 받아먹는다.
시절을 좇아 좋은 옷으로 옷장 가득히 채워 주신다.
좋은 교회, 좋은 성도를 만나 천국 생활을 하게 하신다.
좋은 부모 형제, , 복된 가정을 만나 누구 못지 않게 행복하다.

그런데 때로 내 안을 들추어보면,
한 구석엔 불만과 투덜거리는 마음이 자락을 드리우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한없건만
하나님께서 주신 오늘의 은혜가 1센트밖에 더되냐고 되묻는 것처럼 .
하나님께서 햇빛을 너무 강하게 주셔서 광야가 되고 말았는가?

주님
아직 황폐해 있는 한 내 마음의 한 구석을 긍휼히 여기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뻐하고 찬송할 마음을 회복케 하소서!

15년만에 만나게 된 이모님과 함께 나이아가라 갔습니다. 그곳에 머물며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나누는 동안 제 안에는 깊은 감사가 솟아났습니다.
저절로 찬송이 솟아나왔습니다. 40장에 맞추어 찬송을 지었습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나이아가라
하늘 높이 뜬 언약의 무지개
물보라 속 날으는 저 물새들
넘치는 주의 은혜 노래해.


만왕의 왕이 우리 안에 입성하시길 원하십니다.
평화와 겸손을 회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자유함과 사명을 회복하시길 원하십니다.
기쁨과 찬송을 회복하시길 원하십니다.

이번 종려 주일에 이 놀라운 주님을 영접하시길 바랍니다.

(죽으심) 마가7:24-37 하나님 손에 들린 악기

[들어가는 말]

오늘 종려주일입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아 환호하였습니까?
그분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시간 저들의 환호는 옳았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놀라운 소식을 나누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다는 소식입니다.
캔디 정도를 선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쁜 목걸이 정도를 선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집 한 채를 선물로 주신 정도가 아닙니다.
요즈음 우리 서머나 식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성전을 선물로 받아 얼마나 기쁜 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기쁨 정도가 아닙니다.
외아들을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구원의 주님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랑하신 사실을 이로서 알 수 있습니다.
독생자를 주신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정도를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이 온전케 됩니다. 어떻게 하여 이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이 怜퓽?통해 그리스도의 고난까지 묵상하실 수 있기 원합니다.


1. 많은 사람들이 고통 가운데 살아갑니다.

25 이에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본문에는 여러 종류의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더러운 귀신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생각을 해보실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런 어린 딸을 둔 어머니의 고통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고통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우리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불행이 그 소중한 딸을 더러운 귀신이 사로잡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소녀를 더러운 귀신의 마음대로 사용함으로 이 소녀와 그 어머니와 주변 사람들이 고통 당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누구의 손에 들려 어떻게 사용되느냐가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함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이 비밀을 좀더 심각하게 깨닫기 원해서 지혜 양에게 복음 송 한 곡 연주를 부탁했습니다. 들으시면서 나란 악기는 누구의 손에 들려 연주되고 있는가를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제가 이 바이얼린으로 연주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안되는 거죠.
우리의 참된 기도제목은 우리란 악기가 하나님의 손에 들려 연주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러므로 사도바울은 죄에 팔려 잘못 연주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이런 한탄을 하였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러나 자신이란 악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영께 맡기면서 존재의미를 새롭게 하였습니다.

롬 7:25절에는 이런 말씀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무엇이 죄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신 악기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연주하지 못하는 것이 죄입니다.

신명기 28:47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가 모든 것에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을 인하여 …… 필경은 너를 멸절시키리라

이는 참으로 무서운 경고입니다.

우리의 죄는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악기를 너무 나쁜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주변에 하나님께서 풍족하게 주신 모든 선물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라고 주신 악기와 같습니다. 우리는 이 악기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악기로 명연주를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남편과 아내와 자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좋은 악기일 수 있습니다.
어떤 남편은 아내를 잘 연주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아내는 남편을 잘 연주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는 분이 있습니다.
어떤 부모님은 자녀를 잘 연주하여 귀하게 쓰임을 받게 하는 분이 있습니다.

수산나 여사는 그 많은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낸 어머니로 유명한데요. 그녀는 날마다 자녀들을 모아놓고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너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너를 위대하다고 하였느냐?
하나님께서 위대하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
역사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느냐?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교회를 잘 연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생활이 천국 생활처럼 누리는 연주를 합니다. 가는 교회마다 시험이 들어 지옥 맛을 보는 사람보다 얼마나 행복하고 좋습니까?
교회를 불평하며 좋은 교회를 소개해 달라는 청년에게 스펄전 목사님께서는 이런 대답을 하였답니다.
당신이 가는 순간 그 교회는 흐려질 것이다!
교회를 잘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복있는 성도입니다.





2. 예수님께서 그 고통당하는 자들 가운데 찾아오셨습니다.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예수님께서는 아십니다.
어두움의 권세 아래 고통당하는 자의 삶이 얼마나 힘든가를 아십니다.
그래서 찾아오십니다.
다만 모르게 찾아오시기에 많은 사람들은 알 수 없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게네사렛을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셨습니다. 이 두로는 지중해 동쪽 해안에 위치하며 이스라엘 땅에서 멀지 아니한 시돈의 남쪽 32km지점에 있는 성읍입니다. 이방인이 사는 곳입니다. 유대인들이 즐겨 가지 않는 곳입니다. 그 낯설고 하나님의 법이 없는 그 땅에 예수님께서 찾아가셨습니다. 예수님!

왜 그 낯선 땅에 가셨겠습니까?

지난 성탄 절기에 몰에 들렀다가 어떤 소년이 조그만 목걸이를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 이 소년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조그만 쵸콜렛이나 캔디 하나라도 일부러 준비하였다가 누구에게 준다면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 체험한 이야기인데요. 어머니가 자녀에게 주기 위하여 좋은 것을 챙기는 것은 자주 체험한 일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이 자녀에게 주는 것은 귀하고 좋은 것들입니다.
가장 맛있는 것을 자녀에게 줍니다.
가장 값진 것을 자녀에게 줍니다.
가장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쵸콜렛이나 캔디 정도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소중한 것을 준다면 그것은 그만큼 소중한 사랑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방의 땅에서 흑암의 권세 아래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죄와 흑암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의 죄와 고통을 다 아시는 예수님!
죄인을 먼저 찾아오시는 예수님!
죄와 흑암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의 죄와 고통을 치료하길 원하시는 예수님!
이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떠나 베들레헴 구유에 오셨을 뿐만 아니라 오늘은 두로와 시돈의 버려진 영혼들을 찾아 오셨습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주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찬양과 감사를 하나님께 올립니다.

사랑은 주는 행위로 표현됩니다.
‘사랑은 오래참고’란 말씀은 참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인내를 상대에게 주는 행위를 말합니다. 인내를 상대에게 주는 행위(오래참고)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온유하고’란 말씀처럼, 분통이 터지는 사건 속에서 모세가 발휘한 것처럼 화를 쏟아내지 않고 분통터지게 하는 상대에게라도 부드러움과 관용을 주는 행위(온유)가 바로 사랑입니다.


오늘도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서 고통을 당하는 인류의 구원은 먼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심으로 열립니다.



3. 구원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런데 구원을 주시기 위해 찾아오신 사랑의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온 한 여인으로 인하여 열매를 맺어 갑니다. 그녀는 수로보니게 여인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주인공은 헬라인으로 수로보니게 족속이었습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을 찾게 된 까닭은 그녀의 가장 사랑하는 딸이 생각하기조차 싫은 몹쓸 병을 앓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녀의 딸을 사로잡고 있는 귀신은 불순하고 깨끗하지 못한 악령이요, 더러운 영이었습니다(마8:28)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대하여 들었던 소식은 소문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녀에게 이 소문은 너무 소중한 소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소문을 마음에 소중하게 담았습니다.
자녀 건강으로 인하여 심각한 문제를 안고 괴로워하던 그 여인에게는 한 줄기 희망의 서광이 비친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귀한 점은 예수님께 대한 소문을 듣고 마음에 담는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소문을 들은 즉시 행동을 취했습니다.
예수 앞에서 취해야 할 바른 태도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므로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나아가 그녀는 예수님께로 나와서 엎드렸습니다(요20:28).
귀신들을 다스릴 온전한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 엎드렸습니다(F.Hauck).
그리고 간구하였습니다. 기도하였습니다.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그러나 이 갸륵한 여인의 딸을 향한 사랑은 냉혹하리만큼 엄숙한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께서 자신과 딸을 개들로 취급한 데 대해서도 그것을 수용하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거기에다가 부스러기라도 먹을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 여인이 자신을 개의 위치에 놓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딸에 대한 순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존심이 없겠습니까?
자존심은 사람이 자신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마지막 자기입니다.
그 자존심을 그 여인은 사랑하는 딸을 위해 주님 앞에 내어놓습니다.

아들 위로가 학교가는 길에 보니, 그의 손톱이 길어보였습니다.
차에 둔 손톱깎기를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든 위로가 말합니다.
"아빠, 이것은 발톱깎기에요."
"???"
의아해 하는 아빠 보기가 민망했던지 얼른 말을 잇습니다.

"지난 번 시험에 제가 이 문제를 틀렸거든요."
"무슨 문제?"
"손톱깎기와 발톱깎기의 차이에 대하여 쓰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왜 틀리냐?"
"나는 손톱깎기와 발톱깎기를 구분해서 써본 적이 없거든요."
"하하!"

우리는 많이 웃으면서 학교에 갔습니다.

제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났습니다.
가위로 손톱을 깎던 그 시절말입니다.
가위도 없을 때는 연필을 깎던 칼로도 깎고, 그것도 없으면 낫으로도 발톱을 깎던 그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그 고난의 시절이 가고
이제는 손톱깎기와 발톱깎기의 차이를 알아가면서 손톱을 깎는 좋은 시대를 살게 된 것입니다.

신명기 26장 끝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8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날 너를 자기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또 그 모든 명령을 지키게 하리라 확언하였은즉 19 여호와께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말씀하신 대로 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오늘날 우리가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는 까닭은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이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한 것입니다.


오늘 수로보니게 여인은 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의 가장 포기하기 힘든 자존심을 가장 사랑하는 딸을 위해 내어놓았습니다.
자기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람, 그는 진정 놀라운 사랑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귀한 사랑을 귀히 보셨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그 딸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아직 어두움의 권세 아래서 고통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를 위하여 여러분은 이번 고난 주간에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란 악기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습니까?
나에게 들려주신 악기는 잘 연주하고 계십니까?

생명까지 주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 하나님의 성민으로 인정하시는 하나님을 감사하고 계십니까?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으면서도 자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런 제자들의 눈에 사랑하는 딸을 위해 가장 소중한 자존심을 내려놓은 수로보니게 여인의 모습은 많은 생각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밖 이방지역으로 여행하신 목적은 복음을 대중에게 전파하려 하심보다는 우선적으로 제자들을 가르치시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Wycliffe)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예수님께 나아가 자신의 자존심을 헌신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주님 앞에 온전히 엎드려 주님의 은혜를 간구하지 않으시렵니까?

나의 가장 소중한 자존심까지 다 내려놓고
개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받아먹는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으시렵니까?

[설교본문]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 이에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죽으심) 요12:1-13 이 사랑을 위해 난 무얼 할 수 있는가?

[들어가는 말]


2천년 전,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을 주시기 위해 희생하신 분이 계십니다.
십자가 형틀에서.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에게 생명의 봄을 주시려고 아들의 생명을 세상에 심으셨습니다.
오늘은 그 생명이 우리 가운데 피어난 꽃과 열매들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호산나!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리는 종려 주일입니다.

    그러나 이 놀라운 하나님의 생명이 임하셨지만 모든 사람들이 이 생명에 접목된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종류의 반응자가 나타납니다.
    한 사람은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생명을 적극적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에는 가룟 유다가 있습니다.
그는 생명에 접목되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 힘 만으로 섰습니다.
    그리고 2천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생각합니다. 이 놀라운 사랑 앞에서 우리는 어떤 결단을 할 것인가? 마리아와 같이 생명을 영접할 것인가? 아니면 생명을 거부하고 끊어질 것인가?
    마리아와 같이 생명을 영접함으로 기념비적인 인생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하나님의 생명에 접목된 인생이 있습니다.

    마리아를 생각하면 값비싼 향유를 주님께 바친 것으로 유명합니다.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분명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예수님 발에 쏟아부었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생애를 쏟아부은 사건입니다. 과부가 자신의 두렙돈을 쏟아부은 것처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쏟았습니다.

    어떻게 이 놀라운 일을 행할 수 있습니까?
제정신을 가진 자의 할 일입니까?
그녀가 한 일이 유다의 지적처럼 막대한 부를 허비한 저급한 행위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에 접목된 자만의 기념비적인 행위입니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생명에 접목된 근거가 무엇입니까?

    1]영적 양식을 풍성히 공급받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주님께서 자신을 위해 행하신 대속 사랑을 받아들였습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인정하셨습니다.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7)"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릎 앞에 머무는 일을 사랑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마리아는 예수님으로부터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릎 앞에서 분명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매우 사랑하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외아들을 주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라는 독생자를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을 위한 한 알의 밀알로 심으신다는 말씀이셨습니다.

    마리아는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자신을 대신 죽으신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봄날의 따스함을 주시기 위해 겨울의 강추위를 몸으로 받으신다는 그 큰 사랑을!


    2]      나는 이 순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행위는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을 주님의 사랑이 담긴 맞은편 저울에 올려 놓았습니다.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사랑의 무게는 컸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가장 무게가 나가는 300데나리온에 해당하는 값진 향유를 올려놓았습니다.
    사랑하신 분의 사랑에 걸맞는 최고의 것을 올려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와 하나님 사이에 놓인 저울은 한사코 하나님 쪽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주신 사랑의 무게를 당할 길이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발에 올려 드린 향유 옥합 위에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무게가 나가는 자신의 머리를 올려 놓았습니다.
자신이 바친 가장 무거운 값진 향유의 무게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머리카락을 합쳐 예수님의 발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심으신 한 알의 밀알에 대한 마리아의 감사가 예수님의 발 위에 흘러넘치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심으신 한 알의 밀알에 대한 감사를 가지고 계십니까?
2천 년 전에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그분의 아들을 대신 십자가에 내어주신 그 사랑을 마음에 담고 계십니까?
그 놀라운 사랑의 무게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고 계십니까?
마리아처럼 그 사랑의 무게에 감복하여 여러분이 쏟아 부으신 값진 향유가 예수님의 발 위에 흘러넘치시는 이번 고난 주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 놀라운 사랑을 받은 내가 주님을 위해 난 무얼 할 수 있는가!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를 주님께 바쳤습니다.


    2] 고난 가운데서도 꺾여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자라는 마리아는 오라버니가 죽음 가운데 떨어진 극한 상황 속에서도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신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하나님의 대속 사랑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도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은 후,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실 수 있으리라고까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요11:32)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던 오라버니를 이 세상의 어떤 분이 어떻게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이성을 훌쩍 뛰어넘는 소중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11:40)

    "주여, 내가 믿나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 앞에서 힘있게 무덤 속에 있는 나사로를 향해 부르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나사로는 무덤에서 살아 나왔습니다.

    다시 살리시는 주님을 통해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였습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사가 그녀의 믿음 속에서 솟아나고 있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가 놀랍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는 또 하나의 은혜가 큽니다.
오라버니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려주신 은혜입니다.

         요즈음 은퇴하신 목사님이 아들 목사님께 남긴 편지 한 장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들아, 목회는 그리 쉽지 않단다. 모든 교인들을 만족시키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지.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괜히 권위적이진 말거라. 대신 네가 담당해야 할 모든 이들에게 관심을 보여라."

    그는 이어서 이런 귀한 명언을 아들 목사님께 남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듯이 너도 똑같이 사람들을 사랑해라. 사랑은 몇 번이고 반복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단다.”


고난 중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하나님의 생명에 접목된 영혼이 누릴 수 있는 은혜요 특권입니다.
   

    3] 기념비적인 헌신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에 접목된 자의 인생에는 하늘의 양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고난의 바람이 불어도 가지가 부러지지 않습니다.
나아가 열매가 맺히게 마련입니다. 그 열매는 오늘 헌신으로 나타납니다.
기념비적인 헌신의 열매가 맺힙니다.

    그 향유 속에는 값 이상의 기념비적 헌신이 담겨 있었습니다. 물론 300데나리온이란 장정이 일 년이나 일해햐 벌 수 있는 값이 담겨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이상의 중요한 평가를 하십니다.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마26:12)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마리아의 헌신은 사람이 보기에는 여러가지로 평가할 수 있는 그렇게 커보이지 않는 무엇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이 일은 기념비적인 반응이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바친 순전한 신앙 속에서 기쁨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기념비적인 인생을 만나기 바랍니다.

    그런데 마리아에게 오라버니 나사로는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겠습니까? 그 소중한 오라버니를 죽은지 나흘이나 되는 무덤에서 살려주시었으니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아마 그 일로 인하여서라도 그녀가 바친 값진 옥합은 조금도 아깝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더 소중한 것은 그 인생이 하나님의 생명에 접목되어 있음으로 인하여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주님이 소중하게 생각된 마음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무겁게 생각되어 세상의 무거운 것들을 내려 놓을 수 있는 그 믿음이 기념비적인 헌신을 바치게 한 것이지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곁에 있는 부모형제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고 함께 천국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으로 인하여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구원의 길, 천국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은혜요 감격입니다.
    이런 감격을 옥합에 담아 나와 부모 형제 자녀들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한 헌신의 열매까지 자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리아처럼 말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에 바르게 반응합시다.

    1] 가룟 유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받은 제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도 똑같이 성찬을 나누게 하셨습니다.
그를 위해서도 몸을 찢기시고 그를 위해서도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시길 원하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하나님 언약에 연결되기 원하셨습니다.
에녹처럼, 노아처럼, 아브라함처럼, 요셉처럼 하나님의 언약에 접목되기를 원하셨습니다.

    2] 가룟유다는 재능이 뛰어난 제자였습니다.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예수님의 탁월성을 알고 그런 스승 밑에서 사역을 시작한 사람!
    예수님의 공동체에서 재정을 맡은 제자!
    300데나리온의 가치를 손쉽게 계산해 낼 수 있는 사람!
    가난한 자를 주면 얼마나 좋은가하는 명분을 가진 사람!
   
    인류 역사상 가룟 유다만큼 좋은 조건에서 인생을 경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3] 주님을 향한 사랑과 감격을 확보했어야 했습니다.

    -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신 수많은 이적과 구원사역에 왜 감격이 없었을까요?
   -]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마리아의 사랑이 왜 허비로밖에 생각이 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주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있었다면 값비싼 향유를 발라주었다고 하여 허비란 생각이 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분께는 값진 선물이 허비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향유를 발라주는 마리아가 사랑스러웠을 것입니다.  자신이 못한 일을 한다고 칭찬하였을 것입니다. 오히려 마리아에게 감사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는 유다에게 주님을 향한 마리아의 사랑과 감사의 표현은 그에게 허비로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구속사를 떠난 인본주의 적인 사고에 빠져있습니다.

   
    4] 진정한 헌신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그가 주님을 이기적인 동기로 찾고 있었다는 것은 아쉽습니다.

   베드로나 야고보 요한처럼 그물을 버려두고 좇은 기록이 없습니다.
그가 자신의 재산을 팔아 삭개오처럼 세상에 내놓은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처럼 향유를 부은 적이 없습니다.
바나바와 같은 헌신의 모습도 없습니다.

오히려 은 30에 예수님을 넘겨준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은 30은 120데나리온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마리아가 바친 향유 300데나리온의 반값도 되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300데나리온의 향유를 바치는데 가룟유다는 그 반값도 안되는 은30에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더구나 그는 예수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 많은 사랑을 받고 지낸 제자인데 말입니다.


예수님을 왜 따랐을까 생각이 됩니다.
이기적인 동기도 예수님을 따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취하는 일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가롯 유다와 같이 자신의 목적이 첨가되지 않도록 경성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섬길 때 하나님의 목적만 바라보는 순수한 것이 좋습니다.

    1907년 부흥을 체험한 바 있던 한국교회는, 요즈음 부흥을 갈망하는 은 모임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흥은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지나치게 인간 중심의 기획에 의존하면 그것은 진정한 부흥일 수 없습니다. 부흥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성품을 지상의 교회가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기적인 동기보다 순수하게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는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동기가 살아나야 될 줄 압니다.


    요즈음 반 기독교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벌 떼처럼 일어나 기독교인들을 공격합니다. 그분들의 말하는 것을 보면, 너무나 옳게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말하는 것처럼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저는 확신할 수가 없어서 그 말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옳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인들은 얼마나 많은 재산을 하나님을 위해, 이 세상을 위해 내어놓는지 모릅니다. 북한 동족을 돕는 8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많고 우리 기독교인 가운데 부끄러운 모습이 또한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송구스럽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미안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연약함을 회개하면서 마리아처럼 자신의 소중한 것들을 하나님 앞에 바칩니다.
그래서 이런 마리아같은 기독교인들로 인하여 세상에는 살맛나는 일들이 많습니다.

    슬픈 반응, 말은 정말 그럴듯한데 그런 삶을 산다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선한 일에 야지나 거는 인생의 슬픈 모습을 우리는 가룟유다에게서 봅니다.


   
   [마무리하는 말]

    예수님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
그것은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그 놀라운 주님께 어떻게 반응하기 원하십니까?
나사로의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수많은 사람들은 외쳤습니다.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 놀라운 사랑을 생각하면서
마리아처럼 예수님을 위해 자신을 열고
왕으로 인해 오시는 예수님을 찬양합시다.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성경본문]

요12:1-13

    1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2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쌔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8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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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증]

    저에게는 정말 감사한 누님이 계셨습니다.
    천국에 가신지 벌써 4년이 되었지만, 누님은 얼마나 나를 위해 깊은 사랑과 이해를 가졌는지 모릅니다. 교편을 잡는 일이 참 피곤한 일인데 저를 위해 특별히 새벽기도를 날마다 다니셨습니다. 저의 목회를 위해 늘 저축을 하셨던 생각이 납니다. 이런 누님을 천국에 가면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천국에 가고 싶어요.

    지난 금요일 밤,
    남녀 선교회, 고등부, 대학부 별로 삼삼오오 모여 기도회를 갖고 있었습니다.
    저도 강단 앞에서 조용한 시간을 갖고 있었습니다. 고등부 모임을 마친 제 아들 위로가 제게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아빠, 내가 아빠를 위해 기도했어!"

    제가 얼마나 힘이 되고 감사한지 이해하실 줄 압니다.


(죽으심) 사53:5-6,12 주님의 사랑, 어떻게 갚지요?

[들어가는 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생명을 주신 성 금요일입니다. 2천년 전 오늘, 왕중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로부터 고난당하시고 마침내 십자가형을 받아 죽으셨습니다.

성경은 이 사건이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모든 인간이 각기 제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1]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시기하여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섭니다.

- 대제사장들이 여러가지로 고소하는지라
-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종교지도자들은 그들이 섬기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도록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에 가장 능력있고 효과적으로 사역하신 예수님을 시기하여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섭니다.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만나, 섬기며,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도록 백성들을 돕지 못한다면 더구나 방해하였으므로 그들은 사형받아 마땅한 존재들이었습니다.


2] 무리들은 그들을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죽이라 소리를 지릅니다.

- 저희가 다시 소리지르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종교지도자들에게 충동당한 무리들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저들은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각기 제 길로 가고 있었습니다.


3] 정치가 빌라도는 여론만 따라 의인을 십자가형에 내어줍니다.

-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니라

정치가는 불의를 세상에서 막고 의를 세상에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의인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자가형에 내어주었습니다. 대신 불의한 살인자 바라바를 살려줍니다. 왜 불의한 자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의인을 죽이도록 내어주는 것일까요?
그는 그릇된 여론에 휘둘렸기 때문입니다.

각기 제 길로 간 정치지도자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4] 로마 병정들은 죄없으신 예수님을 너무 악하게 대합니다.

-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 예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고
-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 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막15:17-20)

-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쌔 누가 어느 것을 얻을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막15:22-25)

요즈음 한국에서 미국 군인이 사람들에게 못된 짓을 하다 잡혀 재판을 받는 기사를 봅니다. 군인의 본분은 나라를 지키라는 것이고 그 백성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군인들이 인류 역사상 가장 의롭고 존귀하신 분을 잡아 희롱하고 채찍질하고 죽이고 있습니다.

각기 제 길로 간 인생의 슬픈 모습입니다.


5] 지나가는 행인들이 예수님을 모욕합니다.

-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 하고

예수님의 혜택을 누구보다 가장 많이 받은 백성들이 은인 예수님을 모욕하고, 그분의 귀한 사역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행인들이 각기 제길로 갔습니다.

이런 모든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사야 선지자가 남긴 소중한 한 말씀에 아멘으로 동의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각기 제 길로 갔다는 것입니다.



2. 그러나 여호와께서 우리 죄악을 그에게 감당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괴로움과 고통과 모욕을 온몸으로 다 받으십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너무 극심함을 아는 사람들은 진통제 역할을 하는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님 입술에 대어 마시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마저도 거절하시고 스스로 고통을 당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요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고통을 그냥 견뎌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4-5)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셨습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인하여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았습나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끊어졌습니다.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끊어지는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아시지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에서까지 끊어져서 십자가에 달린 채 인류의 고통을 절규로 토하고 계십니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심판 앞에 떨어지는 인류의 비명소리입니다.
죄악에 짓눌린 온 인류의 신음소리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진 아들의 절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큰 소리와 함께 죽은 척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정말 끊어졌고, 절규하였고, 참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50).

예수님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괴로움과 고통과 모욕을 십자가에서 온몸으로 다 받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1]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2] 우리의 평화를 누리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나음을 주시려고 모든 고통을 온몸으로 겪으셨음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대신 죽으심을 통해 나의 인생에 있는 모든 죄와 죽음의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와 세상이 줄 수 없는 치유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마무리하는 말]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1] 먼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감격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 대신 버리심을 당하심으로 나를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신 예쉬 그리스도의 그 사랑에 감복하는 고난 주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나를 하나님의 몸을 삼으시려고 몸을 찢기신 예수님,
나를 하나님 언약의 백성 삼으시려고 나 위해 피를 흘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시는 고난 주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사랑에 복된 반응자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억지로라도 십자가를 지고갔던 구레네 시몬은 복된 사람입니다.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그는 지고 싶어 지고갔던 십자가가 아니었습니다.

어떠한 경위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 곁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그는 억지로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그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갔습니다.
억지로 지고 갔으나 묵묵히 주님 곁에 함께 걸어가 루포의 아버지 구레네 시몬, 그는 훗날 복된 믿음의 사람으로 세상에 가문을 세우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레네 시몬처럼 억지로 십자가를 졌다 하더라도 믿음으로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성경본문]

이사야53:5-6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12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참고성경:마가15:16-39]

16 군병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엮어 씌우고
18 예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찌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비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서 와서 지나가는데 저희가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24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쌔 누가 어느 것을 얻을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26 그 위에 있는 죄 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8 (없음)
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 오라 하고
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찌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33 제 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 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이들이 듣고 가로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융에 신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고 가로되 가만 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죽으심) 사53:1-10,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

성금요일 메시지

사53,1-10
여호와의 팔은 누구에게 나타나는가?


[들어가는 말]

2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는 선포합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메시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믿을 수 일입니다.

메시아가 이렇게 오신다니?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오시리라 기다리데 믿을 수 없는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메시아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입니다.

그래서 외칩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여호와의 팔은 그분께 나타날 것입니다.
바로 이 메시야에게 여호와의 팔은 나타날 것입니다.

그분은 어떤 메시아로 오십니까?”


1. 고난 당하시는 메시아입니다.

[사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은 빌라도 총독이 단언합니다.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죄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1] 희롱을 당했습니다.

[1]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떠들며 희롱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였습니다.

"이 희롱의 순간이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것처럼 심리적으로는 더 아프고 힘든 순간이었을 것"이라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마27:30]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그들은 예수님의 손에 왕의 홀을 대신하여 갈대를 들리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갈대로 예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머리를 갈대로 내려쳤습니다.


[2] 종교지도자들도 예수님을 희롱합니다.

[마27:41-42]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42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3]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까지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마27:39-40]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또한 예수님은 강도들에게서까지 욕을 얻어먹었습니다.

[마27: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2] 예수님은 수치를 당했습니다.

[마27:27-28]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옷을 벗겨짐 당했다고 하는 것은 신분의 박탈을 의미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나를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높여주시기 위하여 왕 되신 신분을 박탈당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사정없이 내리치는 채찍이 목과 등을 할퀴고
새빨간 핏자국이 동생 배시의 옷에 번지는 것을 보면서
언니 코리는 순간적으로 정신을 놓았다.
자신이 라벤스부르그 유태인 포로수용소에 있다는 것도 잊은 양 일하던 부삽을 들고 동생을 가격하는 간수를 향해 달려간다.
이 절대 절명의 위기를 직감적으로 알아챈 동생 배시는 코리를 결사적으로 껴안는다.

"언니, 주님만 바라 봐. 내 상처를 보지 말고."

나의 상처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상처를 바라볼 때
우리에게는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아픔을 느낀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맞으신 상처를 바라볼 때,
한없는 위로와 치유함을 체험한다.

무엇을 위한 신체검사였을까?
돌보지 않은 인간의 발가벗겨진 몸을 보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다.

"배시야, 그들은 예수님 옷도 벗겼단다."

살아 계신 주님의 고난에 연결된 인생은 이렇게 복이 있다.

누가 그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으랴!
(노목사:"그분의 상처만 바라보라 ")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감추시기 위해, 벌거벗기 움을 당하신 것이었습니다.


왜 메시아는 이렇게 찔리고 모욕을 당해야 했을까요?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멸시를 받고, 찔림 당하신 분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희롱과 모욕과 수치와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타났습니다.

오늘 날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난다고 생각하십니까?”

주님과 함께 가면서
희롱과 모욕과 수치와 고난을 받아본 사람은 답을 알 것입니다.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2.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입니다.

[마27:38]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죄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속죄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반드시 치료받아야 할 질병으로 여기셨기 때문입니다."(스펄젼)

이런 심각한 우리 죄를 치료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밖에하실 수 없었습니다.

반드시 치료받아야 할 질병 때문에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갈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저주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 내려진 하나님의 저주였습니다.

정말 놀랍지요?
믿어집니까?
그래서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사53:1a]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바로 이어서 선포하십니다.

[사53:1b]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 위에 여호와의 팔이 나타났다는 말씀입니다.

이를 깨달은 헨델은 메시아란 곡을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가 남긴 ‘메시아’곡의 악보 원본은 눈물로 얼룩져 있다 합니다.

렘브란트란 화가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화폭에 담고, 그분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십자가 아래 그려 넣으면서 자신의 모습도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통곡했습니다.

“내가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박았구나!”

[사53: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스펄젼은 1868년 10월 4일 주일 설교에 이런 내용을 전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내려친 채찍은 로마 병정들의 것이었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전 인류에게 내려치신 채찍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그의 몸과 영혼으로 가로막아 대신 맞으셨습니다."

죄의 결과로 영적 질병이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라는 치료제를 장만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란 말씀은
너무 가슴 아프고
하지만
죄 용서를 받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기쁨에 넘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GOOD FRIDAY!
라고 합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53:5)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 앞으로 달려오십시오.
당신 죄가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흰 눈처럼 깨끗케 될 것입니다.


“오 예수님, 내가 옵니다.
못 박히신 십자가 앞에
그 큰사랑 눈물에 겨워
울며울며 돌아옵니다.
주님 손과 발 못 박혔고
머리엔 가시관 박히셨네.
내 모든 죄와 허물 위해 말없이 피 흘려주셨네.
오 예수님 나의 손 잡고
이제부터 영원까지 내 구주가 되옵소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내 구주가 되옵소서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3. 가시 면류관을 쓰신 분입니다.

[마27:29]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원래 면류관은 왕이 쓰던 왕관이었습니다.

고대 올림픽경기에서는 승리자에게 씌어주던 영예의 관이 면류관이었습니다.(딤후 2:5).

승리하신 왕이, 적을 정복한 왕이 갖추어 쓰던 관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울 때, 이 면류관을 준비하였습니다.

에스더는 왕후로 취임할 때, 면류관을 썼습니다.

[에 2:17]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욱 사랑하므로 저가 모든 처녀보다 왕의 앞에 더욱 은총을 얻은지라 왕이 그 머리에 면류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를 삼은 후에


그런데 2천 년 전 로마 군인들은 금 면류관 대신 우리 예수님께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씌웠습니다.

예수님이 쓰신 가시관!
왕 중 왕이신 메시아가 쓰신 면류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가시관을 쓰심으로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왕 중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죽으시고
죄의 권세를 깨부수고 승리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애 5:16]
우리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함을 인함이니이다

이 믿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1] 대신 우리 머리에는 면류관이!

[슥6:11]
은과 금을 취하여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한없이 부끄러운 제사장, 여호수아,
그를 깨끗케 하시고 면류관을 씌우시는 하나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가시관을 씌우시고,
우리에게는 구원의 면류관을 씌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이 믿어지십니까?

[사53: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세상의 왕들과 전혀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자신의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려고 다른 사람들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웁니다.
부귀, 영화, 존귀는 자신들이 차지하기 위해 저주와 고통과 아픔은 다른 사람들이 지고 가도록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써야 할 가시관을 대신 쓰심으로 우리에게 왕의 관을 씌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2] 죄인에게 죄를 용서받을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의 죄가 얼마나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아픈 가시가 되는 지 아시지요?

세상에 우리를 찌르는 가시들이 많습니다.

가정에 우리를 찌르는 가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한 아픈 상처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공동체에 우리를 찌르는 가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한 아픈 상처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배신의 가시,
말의 가시,
쏘아보는 눈의 가시가 찔러 옵니까?
선한 일을 하다가 가시에 찔렸습니까?
충성하고 봉사하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다 가시에 찔렸습니까?
인간들은 저마다 가시에 찔린 상처로 아파하고 괴로워합니다.
나 혼자 아픈 것 아닙니다.
나도 찔렸고 너도 찔렸습니다.
가시로 찔린 모두가 상처투성이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화목할 수 없습니다.

모두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무서운 죄를 용서받을 길이 열렸습니다.

[사53: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대신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를 용서할 수 있는 여호와의 팔이 나타났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예수님 머리에 상처를 준 가시는 신비의 수술도구와 명약이 되어서 인생의 상처를 치료한다"라고 했습니다.

가시 면류관을 쓰신 에수님을 바라보세요.
거기에 치유함이 있습니다. 화목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대신 쓰시고 흘리신 화목제물의 보혈이 우리의 상처를 치료해 주십니다.



그 치료약은 효과가 즉각적이고 완벽합니다.
그 기이한 치료약을 병자들에게 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마무리하는 말

이 세상 누가 내가 받을 저주를 대신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 누가 내가 받을 상처를 대신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 누가 내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 역사의 음지를 양지로 바꾸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참 빛으로 인간을 찾아오셔서
내가 받을 저주를 구원으로 바꾸셨습니다.
내가 받을 상처를 치유로 바꾸셨습니다.
내가 받을 패배를 승리로 바꾸셨습니다.

금세기 널리 알려진 신학자였던 Bowman 박사가 인도 캘커타에서 선교할 때 들은 이야기입니다.

동네의 친구였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한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힌두교의 많은 남신과 여신들로 만족할 수 없습니까?"

그 노인은 담담히 대답했대요.

"그들 가운데 나를 위해 죽은 신은 아무도 없었소."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랑의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님만이 나를 위해 가시 면류관을 쓰셨습니다.
예수님만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만이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만이 나를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심판대의 변호사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나와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여호와의 손은 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ale는 자에게 나타납니다.



[성경본문]

[마27:27-44]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33.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36. 거기 앉아 지키더라
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38.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이사야1:1-10]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죽으심) 사53:1-6, 여호와의 팔이 성도에게

[들어가는 말]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일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고,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종려주일인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주 역사상 가장 크고 비밀한 일을 행하신 말씀에 초대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음을 받습니다.

     살아계신 여호와,
일을 지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손이 오늘날 누구에게 나타나는가?


1. 멸시받고, 버림당한 그입니다.

[사53:2-3]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습니까?

로마 왕궁의 시저나 대제국에 나타났습니까?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같은 세계적인 철학자들에게 나타났습니까?
헤롯왕이나 빌라도 같은 정치가에게 나타났습니까?
제사장이나 바리새인, 사두개인과 같은 종교지도자에게 나타났습니까?

그럼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습니까?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으신 아기 예수님께 나타났습니다.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예수님께 나타났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신 그 예수님께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던 그 예수님께 하나님의 팔이 나타났습니다.

     주 앞에서 연한 순같이 자라나신 그 예수님께 여호와의 팔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연약하기 짝이 없는 아기였을 때,  헤롯왕이 죽이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마리아와 요셉 품에 안겨 애굽으로 피하실 수밖에 없던 그 예수님께 하나님의 팔이 나타났습니다.

왜 입니까?

     세상은 마른땅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마른땅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마른땅이었습니다.

미천하고 연약하였습니다.

가룟 유다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수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좌우편을 노렸습니다.
도마는 의심이 많아 마른 땅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사신 시대가 마른땅이었습니다.
불의와 죄악으로 황폐한 마른 시대였습니다.
악과 부패가 가득한 메마른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가 되셨습니다.

선한 것을 찾기 힘든 마른 땅과 같은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으셨습니다.

위클리프, 루터, 웨슬리 등은 이 은혜를 깨닫고 그 시대에 빛을 비추었습니다

마른땅에 생명의 줄기를 나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청교도들이 연약하여 멸시를 받고 마른땅이 되었을 때, 주님은 그들의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 같으셨습니다.

그 마른 땅 같은 강도에게 예수님은 생명의 줄기 같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충만하심이 마른 땅 같은 우리 안에 생명의 줄기가 되십니다.

미련해서 땅이 말라갈 때 주님은 지혜의 줄기가 되십니다.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황폐한 심령에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의 줄기가 되어 주십니다.
말씀 앞에서 메마르고 황폐한 자신을 보고 있습니까?
그리스도는 마른땅에서 나온  말씀의 줄기가 되십니다.
쓰임 받기에 부족한 마른땅이라고 느끼고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넉넉히 채워 쓰시는 줄기가 되십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가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너무 약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약할  때 강함이 되시는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이십니다.

시대가 어두움을 탓하지 마십시오.
밝은 태양이 빛날 때, 별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나 해가 지고 어두움이 오면 별은 빛납니다.

그는 메시아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메시아, 그런 연약하고 멸시받고 힘없으신 구원자라는 사실은, 연약하고 멸시받고 힘없는 우리에게도 복된 소식입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팔이 연약하고 멸시받고 힘없고 가난한 성도들에게 나타날 수 있다는 복된 소식입니다.
연약하여 범죄할 수밖에 없고,
연약하여 죄의 종노릇을 할 수밖에 없고,
도움이 없이는 자립할 힘도 없는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의 팔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우리 성도들에게
여호와의 팔이 나타나 함께 하신다는 소식은 좋은 소식입니다.

     롤프 이탈리안더란 사람은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로의 빈민촌을 바라보고 서 있는 2310피트의 코르코바도의 그리스도상에 열심히 기어오르는 가난한 사람의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그 가난한 사람은 그리스도상에게 말합니다.

     "나는 저 아래 있는 더럽고 비좁은 숙소에서 당신께로 기어 올라왔습니다. 호화로운 이 도시 맞은 편에 있는 저 아래 빈민촌에는 나같은 사람이 900,000명이나 살고 있습니다. 나와 함께 빈민가로 가서 거기서 우리 함께 살아요. 우리 가운데 살면서 당신과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믿음을 주세요."

     주님께는 이런 연약한 자들을 위해 준비하신 팔이 있으십니다.

2천년전 주님께서 죄와 사망의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를 찾아오신 까닭은 바로 이런 연약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 가운데 그 백성의 신음과 고통을 돌아보시려고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동등 됨을 버리시고 육신을 입고 임마누엘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죤 스타트 박사는 이방신을 연구하다 이런 글을 썼습니다.

     "그를 찾아온 신도는 너무나 연약하고 불쌍하여 도움을 요청하나 불상은 한없이 자애로운 모습으로 좌정한 채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그 백성의 고통에 눈감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고통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성도를 찾아오신 분이십니다.

     견디기 힘든 고통 가운데 거하시는 계시는 분이 계십니까?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여호와의 팔이 그런 나에게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통당하는 나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신 하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도우시길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납니까?
여호와의 긍휼을 바라는 죄인에게 나타납니다.
우리 죄는 반드시 치료받아야 할 병임을 아십니다.
그리스도는 그 죄를 치료하시는 신묘한 약이십니다.
그 치료약은 효과가 즉각적이고 완벽합니다.
자기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은 압니다. 하나님의 팔이 얼마나 연약한  자를 힘있게 붙드시는 지를 말입니다. 십자가상의 강도는 그 증인입니다.
로마 통치하에서 고통당하던 연약한 성도들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의 팔을 믿습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핍박을 당하는 자들에게 나타날 여호와의 강하신 팔을 믿습니다.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납니까?

주 앞에서 연한 순같이 자라나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타났습니다.

연약해질 때, 죄에게 패배할 때, 연약한 자를 위해 준비하신 여호와의 팔을 기억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이 기이한 치료약을 세상 환자들에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기본 원리를 자랑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살아계신 여호와,일을 지어성취하시는 여호와의 손이
오늘날 누구에게 나타나는가?

비버리지 주교가 나이가 많아 임종에 이르렀을 때 주위의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그때 전속사제 한 사람이 가까이 와서 『제가 누군지 아시겠습니까』하니까,『당신 누구요?』그러더랍니다.


그의 아내가 다가가서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하니까,역시 『당신 누구요?』하더랍니다.그래서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아십니까』했더니,금방 대답하기를 『물론이지요.나는 40년간 그와 사귀어 왔답니다.그분은 나의 유일한 희망이랍니다』


2. 대신 허물과 죄를 지신 그분입니다.

     [사53:4-5]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질고와 우리의 슬픔, 우리의 죄악, 우리의 허물을 짊어지셨습니다.
그분이 짊어지신 것은 그분 자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것이었습니다. 이는 대리 개념입니다.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질고와 우리의 슬픔, 우리의 죄악, 우리의 허물을 대신하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의 결과뿐 아니라 우리 죄 자체에서부터 구원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죄와 그 결과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고난에 동참하신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안고 있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것입니다.

설교 예화 4
키워드: 대속
죄를 대신 치른 형의 이야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실제로 일어난 실화이다.

미국으로 이민 온 중국형제가 미국땅에 적응해가기 시작 했다. 하지만 형에 비해서 동생은 한탕주의에 빠지고 그곳의 깡패들과 어울리게 되어 언제나 형의 걱정을 더해 주었다. 크고 작은 여러 사건을 통해 동생을 말류 해보았지만 결론은 언제나 그 자리였다. 동생도 형의 사랑을 아는지라 자신이 하는 것이 잘못됐다 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되돌이키기는 이미 늦어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동생은 피 묻은 옷을 입고 울면서 집으로 들어온다. 사람을 죽인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죽인 사람의 피가 흔건하게 묻은 외투를 걸치고 유일하게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형에게 달려 왔다.
밖에서는 투항하라는 경찰들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어찌 할 바를 모르던 형제는 그저 울기만하다가 동생의 자수로 결론을 내리려 한다. 하지만 이대로 보내면 동생은 사형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형은 동생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동생에게 새로운 인생을 살아달라고 애원을 한다. 그리곤 입고 있던 동생의 겉옷을 빼앗아 입고 문밖으로 뛰어 나간다.
경찰은 서라는 명령을 내리지만 멈추지 않고 뛰게 되고 경찰은 죽인 살인범이라 생각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그리고 죄의 피의에 대속의 피를 흘린다.
나중에 진짜 죄인이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미 누군가가 죄의 대가를 치렀기 때문에 동생은 사면이 되고 풀려난다. 그리고 그 동생은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닌 이제는 형이 소원한 올바른 인생을 살게 된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모든 고초를 다 치르시고 죽으셨으니 이제 우리도 예수님이 원하시는 그의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말씀: 갈라디아서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출처: 극단 예수님의 공간 대본 중 “오빠의 십자가”

여호와의 팔은 우리의 질고와 우리의 슬픔, 우리의 죄악, 우리의 허물을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평화를 누리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인 질병
정신적인 질병
사회적인 질병
신체적인 질병
그 어떤 질병 속에서도 고통당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질고 때문에
우리의 슬픔 때문에
우리의 죄악 때문에
우리의 허물 때문에
우리는 평화를 잃고 질병 속에서 고통을 당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질고와 우리의 슬픔, 우리의 죄악, 우리의 허물을 짊어지셨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이 예수 그리스도께 나타났습니다.

유대인들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오실 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팔은 로마 제국의 권세를 박살내고 그 백성을 로마통치에서 구원하여 낼 그런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메시아를 다윗의 자손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감한 까닭은 다윗왕조 때의 번영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팔이 그런 곳에 나타났습니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타났습니다.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 대신 찔리고
우리 대신 상하고
우리 대신 징계를 받고
우리 대신 채찍에 맞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질고와 우리의 슬픔, 우리의 죄악, 우리의 허물을 짊어지셨습니다.

여호와의 손이 이 예수 그리스도께 나타났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어떤 농장 집에 목사님이 머물게 되었어요. 그는 농장 주인을 예수님 믿게 하려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전도해도 듣지 않습니다. 믿지 않더랍니다.
어느 날, 농장 주인이 목사님의 방문을 두드리며 빨리 좀 나와 보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따라가 보았더니 닭장에 큰 암탉이 족제비한테 목이 물려서 피를 다 쏟고 죽어 있더랍니다. 그 주인이 그 암탉을 툭 치니까 죽은 채 쓰러지는데 그 품에는 병아리 여러 마리가 삐약삐약 하고 살아서 뛰어나왔습니다. 그 어미닭은 뛰어 도망가면 얼마든지 살 수가 있었지만 자기 새끼들을 살리기 위해 그대로 앉아서 피 흘리고 죽은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스펄전은 우리에게 이런 고백을 남겼습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그분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제를 가지셨습니다.
시험을 많이 당하였습니다.
많이 아프셨습니다.
죽기까지 많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오 질고의 왕이여!
오, 상처의 왕이여!

나를 위해 모든 질고와 상처를 담당하신 나의 왕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찾아 주시려고 고엘로 우리에게 오신 왕!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짐을 당하시기까지  고통을 당하신 왕,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 당한 자는 내로다.”(애3:1)

세세에 찬양을 받으셔야  할 그 하나님께서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셨습니다.
천사들에게 경배를 받으셔야 할 그 하나님께서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았습니다.
이런 주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

렘브란트란 화가는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화폭에 담으면서 군중 속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었습니다. 그리고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나는 그 일에 동참하였다.
육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몸에 내려쳐진 그 채찍은 로마병정의 채찍이었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내려치신 채찍으로 그리스도가 그분의 몸과 영혼으로 가로막아 대신 맞으셨습니다.
여호와의 팔을 사랑합니다.
마른 땅 같은 내인생에 생명의 줄기가 되심을 감사합니다.
나의 모든 죗짐을 감당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간고를 많이 겪으셨습니다.



     [설교본문: 이사야53:1-6]

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죽으심) 눅23:32-38 왕의 죽으심과 죄 용서

 [들어가는 말]

  메튜 헨리 목사님(1662~1714)이 어느 날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습니다.
그날 그의 일기 한 부분입니다.

  "소매치기는 내 지갑을 훔쳐 갔지만 내 생명은 훔쳐 가지 못했다.
   나의 신앙과 영생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왕으로, 그를 다스리고 계셨습니다.


1.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러 오셨습니다.

  [눅23: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첫 사람 아담이 잃어버린 낙원을 회복하러 오신 왕이십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유대인의 왕이냐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시인하십니다.

  [눅23:3]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로마제국과는 차원이 다른 나라의 왕이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무죄를 선포합니다.

  [눅23:4]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후에도 '유대인의 왕'이란 명폐가 붙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러 오셨습니다.



  2.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왕께 용서할 수 없는 짓을 행하였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너무 기가 막히고 억울한 일이 많습니다.

  국화빵을 파는 어머니 옆에서 뻥튀기를 팔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이 학생이 극장 앞에서 과일 장사를 시작하였습니다.
늦여름 밤이었습니다.
이 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장사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화의 마지막 회를 보고 극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한가락 희망을 걸고 극장 입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자동차 한 대가 후진을 하다가 그만 이 학생의 리어카를 받아버렸습니다. 과일들이 땅바닥으로 우르르 쏟아졌고 수박은 박살이 나버렸습니다. 굴러다니는 과일을 줍기 위해 땅바닥을 엉금엉금 기고 있던 그의 목덜미 위로 욕설이 쏟아졌습니다.

"야, 이 자식아! 리어카 똑바로 대!"

자가용 주인의 위세에 눌려 엉겁결에 잘못했다고 말했지만, 이 학생은 슬그머니 화가 치밀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살아서 무엇 하나. 차라리 어디론가 떠나버리자.'

주머니에 있는 돈을 헤아려보니 서울 갈 여비는 될 것 같았습니다. 북받쳐 오르는 서러움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옆에 있는 포장마차로 들어갔습니다. 술이라도 한 잔 마시고 떠나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이 학생을 좋게 보아온 포장마차 주인 아주머니께서 술을 내지 않고 망설이고 있을 때,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과일 장사 시작한지 언제인데 아직 어머니께 과일 한 개 드리지 못했구나.'

  새벽마다 기도하는 어머니께 깨진 과일 하나라도 드리고 서울로 떠나야 할 것 같아 그냥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과일 좀 드세요. 많이 남았거든요."

  아들의 과장된 밝은 목소리에 사태를 알아차린 어머니는 과일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아무 말 없이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튿날 새벽에도 어김없이 어머니의 기도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날의 어머니 기도는 더욱 간절하고 길었습니다. 평소와 다른 어머니의 기도가 아들의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그의 가출은 일단 연기되었고 얼마 안 있어 평소의 그로 돌아왔습니다.

  이 학생이 바로 오늘 날 한국의 대통령으로 일하고 계시는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이보다 훨씬 무례한 일들이 2천 년 전 골고다 언덕에서 하나님 나라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 행하여졌습니다.


  1] 하나님 나라의 국민이어야 할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의 왕께 등을 돌렸습니다.

  [35a]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예수님께서는 자신들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회복시키려 오셨는데, 저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서서 구경합니다. 그 중 다수는 매수께 받은 은혜를 배반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 소리쳤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채 구경꾼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2] 관리들은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시러 오신 왕을 비웃었습니다.

  [35b]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십자가에서 우리 위해 이루신 이 소중한 구원을 무가치하게 생각하지 않나요?

  '우리를 구원하소서.'

  "빈손 들고 앞에가 십자가를 붙드네."

왕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주신 구원을 내게 가장 소중한 보배로 생각합시다.


  3] 군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시러 오신 왕을 [희롱]합니다.

  [눅23:36]

  36.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37.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예수님께 자색 옷을 입히고 희롱하였습니다. 자색은 왕이 입는 옷 색깔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왕이 쓰는 면류관 대신에, 가시관을 씌우고 희롱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어떤 왕보다 소중한 왕이신 것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알았다면 그들은 가시관 대신 면류관을 씌워드렸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어떤 관을 주님께 씌워드리고 있습니까?
주님을 치욕스럽게 하는 가시관은 아닙니까?


  4] 예수님 곁에 매달려 있던 행악자도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

  [눅23:39]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그는 사형죄를 범하고 십자가 형에 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편에 달린 강도는 달랐습니다.

   [누가복음 23:42]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나는 예수님 십자가 어느 편에 있습니까? 비난하는 강도입니까? 긍휼을 구하는 강도입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기억하시면 오늘 밤이라도 낙원에 있을 것을 믿습니까?


  5] 종교지도자들은 [거짓 모함]을 하였습니다.

  [눅23:2]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그들은 백성을 미혹하는 거짓 그리스도로, 예수님을 고발하였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나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 대한 바른 생각은 나의 인생을 바꿉니다.
예수님께서 왕이심을 믿고 그분의 통치를 받으세요.
하나님의 꿈이 내 인생에 이루어집니다.



  6] 제자 중 하나였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습니다.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예수님을 따른 가룟 유다! 그는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를 때에는,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나 자신과 나 자신의 꿈을 내려놓고 왕께 순종합시다.




   3.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대신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1]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실 것을 거듭거듭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받으실 고난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눅9:21-22)

  변화산에서 부활의 영광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산에서 내려와서는 큰 이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엄청 감격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고난 당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눅9:43-44]

  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예루살렘으로 열두 제자와 함께 올라오시면서도 고난 받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눅18:31-33]

  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2] 고난을 말씀하신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눅23: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사53:5-6]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십자가 위에서 나의 모든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4. 죄인들에게는 용서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1] 예수님께서는 용서를 가르치셨습니다.

  [누가복음 11:4]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 하라


  [마태복음 18:21-22]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2]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그 시간에 용서를 실천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원수된 자를 내면까지 용서하기는 힘듭니다.

  [예화]

  10여년 전에 사역을 마무리하신 한 원로 목사님을 만나뵌 적이 있습니다.
고난 주간을 맞아 우리는 그분의 간증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분에게는 목회 기간 동안에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한 교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에서 중직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분이 덜컥 쓰러지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그분의 장례식을 집례하게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돌아가신 분이 계신 병원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울면서 기도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님, 제 남편을 깨워주세요."

그 목사님은 그 순간 너무 놀라운 마음이 확 들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저분은 깨워주시면 안되는데......   .'

  10여 년이 지난 오늘, 그분은 그때 자신의 마음을 회개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가 너무 힘들어서 정말 그분이 깨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자신의 마음을 회개한다고 하셨습니다.

  용서란 정말 힘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무례하게 조롱하고
죄 없으신 분을 채찍질하고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형틀에 못박아 죽이는 자들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도록 기도하셨습니다.


  [마무리하는 말]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성도 안에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시고, 하나님의 왕권을 무시하고 죄인되었던 우리에게 용서란 위대한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크리스마스 계절이 되면 미국 워싱톤 D.C.에 있는 중앙우체국에서 산타크로스에게 보내는 편지가 전국에  있는 어린이들에게서부터 수천 수만 통이 몰려든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대개가 “금년 크리스마스 때 좋은 선물을 많이 보내 주세요”하는 어린이들의 소원이 담긴 내용의 편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체국에서는 이 전달할  수 없는 편지를 받아가지고, 전 미국에 있는 교회와 유지들에게 그 편지를 보냅니다. 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보내도록 도움을 청합니다. 이 편지를 받은 미국의 교회와 교인들  그리고 유지들은 알지는 못하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보냅니다. 선물을 보내달라고 보낸 편지를 받고 정성껏 선물을 준비해서 보냅니다.
   그런데 그 우체국 당국자들이 하는 말이 흥미가 있습니다.
분명히  교회나 교인들 그리고 유지들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보내 준 것은 틀림없는데 몇 달이 지나도 “선물을 주셔서 고맙습니다”하는 감사의 편지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선물을 보내 주세요”하는 편지는 수천 수만 통 오는데, “선물을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하는 편지는 거의 없답니다.

   하나님께서 그 외아들을 선물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분을 십자가에내  대신 죽게 하셨습니다.
믿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 수 있는 영생길 열어 주셨습니다.
오늘 밤은 놀라운 하나님께 예배와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설교본문]

32.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36.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37.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죽으심) 마27:27-44 날 위해 제물 되신 예수님

 들어가는 말

     당대 최고의 설교자로 알려진 챨스 스펄젼 목사님은 평생 동안 설교하시고 가르치신 신학을 한 마디로 요약해 주십사 하는 질문에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라 답변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왜 우리 인생의 중요한 주제입니까?

   우리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반드시 '치료받아야 할 질병'으로 여기십니다."(스펄젼)

  이 죄란 질병을 치료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입으셨던 그 옷은 제비 뽑아 나누임을 당합니다.
   못 박히신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 패가 달려 있습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예수님을 모욕합니다.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 희롱합니다.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합니다.
   맛보고 싶지 않은 '쓸개 탄 포도주를' 억지로 마시게 함을 당하십니다.
손과 발이 찢기시고 허리가 찢기십니다.


  오늘 종려주일에는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사건이 나의 죄 문제를 치료하실
번제물되심이요
속죄제물 되심이요
화목제물 되심을 알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1. 예수님께서는 번제물이 되셨습니다.

   [마27: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이 말씀은 번제물이 되신 예수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 주십니다.

   1] 예수님은 흠이 없으신 어린양이십니다.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예수님은 빌라도 총독까지도  죄를 찾지 못한 흠이 없으신 의인이십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번제물이 되십니까?

  2] 예수님은 옷 벗김을 당했습니다.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레 1:3절에는

   번제물로 쓰인 흠없는 수소가 가죽이 벗김을 당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옷을 벗기우시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28. 그의 옷을 벗기고

  하나님 아들의 신분이 박탈당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자녀 신분으로 높여주시기 위합입니다.


  코리 텐 붐의 책에 보면,
옷 벗기심으로 번제물 되신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라벤스부ㅤㄹㅗㅋ 유태인 포로수용소란 극한 상황 속에서 코리와 그의 동생 뱃시가 생생하게 체험합니다.


  "사정없이 내리치는 채찍이 목과 등을 할퀴고
새빨간 핏자국이 동생 뱃시의 옷에 번지는 것을 보면서
언니 코리는 순간적으로 정신을 놓았다.
자신이 라벤스부ㅤㄹㅗㅋ 유태인 포로수용소에 있다는 것도 잊은 양
일하던 부삽을 들고 동생을 가격하는 간수를 향해 달려간다.
이 절대 절명의 위기를 직감적으로 알아챈 동생 뱃시는 코리를 결사적으로 껴안는다.

 "언니, 주님만 바라 봐. 내 상처를 보지 말고."

 그렇다.
내 상처,
사랑하는 사람의 상처를 바라볼 때
우리에게는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아픔을 느낀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맞으신 상처를 바라볼 때,
한없는 위로와 치유함을 체험한다.

무엇을 위한 신체검사였을까?
돌보지 않은 인간의 발가벗겨진 몸을 보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다.

   "뱃시야, 그들은 예수님 옷도 볏겼단다"

살아 계신 주님의 고난에 연결된 인생은 이렇게 복이 있다.

누가 그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으랴!

(노목사:"그분의 상처만 바라보라 ")에서

   (욥 19:9) 나의 영광을 벗기시며 나의 면류관을 머리에서 취하시고


   예수님께서 번제물 되심으로
벌거벗기 움을 당하심으로
우리 죄와 허물을 감추신 것입니다.

   (욥 29:14) 내가 의로 옷을 삼아 입었으며 나의 공의는 도포와 면류관 같았었느니라

   예수님께서 번제물이 되심으로 옷을 벗기신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옛사람과 옛사람에 속한 것들을 벗어버릴 용기를 줍니다.

(엡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히 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2] 희롱을 당했습니다.(27-32)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로마군병들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를 떠들며 희롱했습니다.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들은 예수님의 손에 갈대를 들리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갈대로 왕의 홀을 대신하여 예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머리를 갈대로 내려쳤습니다.



  종교지도자들도 예수님을 희롱합니다.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온인류의 구원을 위해 오신 메시야께 자신조차 구원하지 못한다고 희롱합니다.

  어떤 분은 "이 희롱의 순간이 십자가의 고통보다 심리적으로는 더 아프고 힘든 순간이었을 것"이란 표현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그분이 구원하지 못하심이 아니라, 우리 구원을 위해 번제물이 되셨음을.


  죄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은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까지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무슨 말입니까?

   자기도 구원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이런 의미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신 쓴잔은 우리 죄를 위해 번제물이 되신 어린양의 고통인 것을!

  예수님은 심지어 강도들에게서까지 욕을 얻어먹었습니다.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예수님께서 받으신 조롱 희롱 모욕 당하심으로 번제물 되심은 우우리가 받아야 할 죄를 대신 지심입니다.


   번제물이 되심으로 주홍 같고 진홍 같은 피를 흘려  우리의 죄를 눈과 같이 양털같이 희게 하셨습니다.

이를 예수님이 고난 당하시기 700년 전의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찌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야1:18).

   번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공로를 덧입은 우리는 이렇게 노래할 수 있습니다.

(롬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골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2. 예수님은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38 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죄 없으신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속죄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세우시기 위해 속죄제물이 되신 것이지요.
우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고통과 아픔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모든 백성들에겐 구원과 속죄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갈3:13)

   저주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 내려진 저주였습니다.

이 사실에 놀란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램브란트란 화가는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화폭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시는 모습을 색채로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군중들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불현듯 그는 그 군중 속에 자신을 그려넣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못박았구나. 내가 이 악한 일에 동참하였구나."

   헨델은 어느 날 이사야 53장을 읽어갔습니다.
고난당하시고 영광 받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의 영혼을 뒤흔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조용히 '그 메시아'를 그의 악보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훗날 발견된 그의 악보는 눈물 자욱으로 얼룩져 알아보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같은 원주민 선교사는 '나는 설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빼고 설교한 적이 없다'는  고백을 합니다. 십자가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스펄젼은 1868년 10월 4일 주일 설교에 이런 내용을 전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내려친 채찍은 로마 병정들의 것이었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전 인류에게 내려치신 채찍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그의 몸과 영혼으로 가로막아 대신 맞으셨습니다."

그리고 몇년 후,
이런 설교를 계속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반드시 치료받아야 할 질병으로 여기십니다.
그러나
죄의 결과로 영적 질병이 들어오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라는 치료제를 장만하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란 말씀은
너무 가슴 아프고
하지만
너무나 기쁨에 넘치는 말씀입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 앞으로 달려오십시오.
당신의 죄가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흰 눈처럼 깨끗케 될 것입니다.

   고형원 형제는 속죄의 큰 사랑 앞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오 예수님 내가 옵니다. 못 박히신 십자가 앞에
그 큰사랑 눈물에 겨워 울며울며 돌아옵니다
주님 손과발 못 박혔고 머리엔 가시관 박히셨네
내 모든 죄와 허물 위해 말없이 피 흘려 주셨네
오 예수님 나의 손 잡고
이제부터 영원까지 내 구주가 되옵소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내 구주가 되옵소서


   3. 가시 면류관을 쓰심으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29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면류관은 왕관이요 승리자들이 쓰는 것입니다.
면류관(Crown)은 고대 올림픽경기 기타의 경기에서 승리자에게 주던 영예의 관입니다(딤후 2:5).
제왕이 정복에 갖추어 쓰던 관이기도 합니다.


   사울왕은 죽는 그 순간까지 면류관을 쓰고 있었습니다(삼하 1:10)

(삼하 1:10) 저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 곁에 서서 죽이고 그 머리에 있는 면류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와스디는 폐위 되는 시간까지 왕후로서 아름다운 면류관을 쓰고 있었습니다.(에 1:11)

   그러나 로마 군인들은 금 면류관 대신 만왕의 왕이신 우리 예수님께 가시관을 씌웠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로 아담 아래 태어난 모든 인간에게는 저주 아래 머물러야 했습니다.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3:17-18).

우리가 받을 저주의 원인과 결과는 무엇입니까?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신28:15-19)

   주님께서는 가시 면류관을 쓰심으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애 5:16) 우리 머리에서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함을 인함이니이다

   1] 저주를 구원(속죄)으로 바꾸셨습니다.

   (슥6:11) 은과 금을 취하여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하나님이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한없이 부끄러운 제사장, 여호수아,
그를 깨끗케 하시고 면류관을 씌우시는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왕들과 전혀 다릅니다. 세상 왕들은 그 자신들의 머리에 금 면류관을 씁니다. 부귀, 영화, 존귀는 자신들이 차지합니다. 그러나 저주와 고통과 아픔은 백성들이 지고가도록 합니다.




2] 죄를 치유 받을 길이 열렸습니다.

우리의 죄가 얼마나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아픈 가시가 됩니까? 그 가시 면류관은 크고 작고 굵고 가는 가시로 만들어져 그것들이 예수님의 머리를 사정없이 찔렀습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올려진 가시 면류관을 보면 하나님께서 주님 안에서 이루신 화목의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우리를 찌르는 가시들이 있습니까?
가정과 직장에서 가시가 있고 상처가 있습니까?
이로 인한 아픈 상처들이 있습니까?
배신의 가시, 말의 가시, 쏘아보는 눈의 가시가 찔러 옵니까?
선한 일을 하다가 가시에 찔렸습니까?
충성하고 봉사하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다 가시에 찔렸습니까?
인간들은 저마다 가시에 찔린 상처로 아파하고 괴로워합니다.
나 혼자 아픈 것 아닙니다.
나도 찔렸고 너도 찔렸습니다.
가시로 찔린 모두가 상처투성이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화목할 수 없습니다.

가시 면류관을 쓰신 에수님을 바라보세요.
거기에 치유함이 있습니다. 화목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대신 쓰시고 흘리신 화목제물의 보혈이 우리의 상처를 치료해 주십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예수님 머리에 상처를 준 가시는 신비의 수술도구와 명약이 되어서 인생의 상처를 치료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계속하여 말합니다.
그 치료약은 효과가 즉각적이고 완벽합니다.
그 기이한 치료약을 병자들에게 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3] 화목의 제물되신 주님의 은혜를 입은 자에게 면류관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사28:5)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남은 백성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이 은혜를 입은 성도는 하나님의 면류관이 됩니다.

   (사 62:3)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시 21:3)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주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심으로 하나님과 화목된 우리 성도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각양 좋은 면류관을 씌워주셨습니다.


   (계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사랑하는 서머나 교우 여러분,

이사야 선지자는 주님 오시기 700년 전에 이런 예언을 전해주었습니다. 사61:3을 보시겠습니다.

무른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 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여 하심이니라

   이 놀라운 면류관을 우리 성도에게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손을 높이 듭시다.

   내 손을 주께 높이 듭니다 내 찬양 받으실 주님
내 맘을 주께 활짝 엽니다 내 찬양 받으실 주님
슬픔 대신 희락을 재 대신 화관을
근심 대신 찬송을 찬송의 옷을 입으셨네
내 손을 주께 높이 듭니다 내 찬양 받으실 주님
내 맘을 주께 활짝 엽니다 내 찬양 받으실 주님



마무리하는 말

   속죄제물 되심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의 질병을 치료해주셨습니다.
번제물 되심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헌신할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화목제물 되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기름을 부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혀주심으로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누구나 저주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누구나 상처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채찍에 맞는 일을 싫어합니다.
누구나 패배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벌을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나 저주 가운데서 살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고
패배의 아픔 속에서 삽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 이 모든 음지를 양지로 바꾸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참 빛으로 인간을 찾아오셔서
저주를 구원으로 바꾸셨습니다.
상처를 치유로 바꾸셨습니다.
패배를 승리로 바꾸셨습니다.

금세기 널리 알려진 신학자였던 Bowman 박사가 인도 캘커타에서 선교할 때였습니다.
동네의 친구였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한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힌두교의 많은 남신과 여신들로 만족할 수 없습니까?"
"그들 가운데 나를 위해 죽은 신은 아무도 없었소."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랑의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님만이 나를 위해 가시 면류관을 쓰셨습니다.
예수님만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만이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만이 나를 위해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심판대의 변호사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나와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슥 9:16)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계 3: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성경본문]


마27:27-44

27.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28.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29.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30.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31.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32.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워 가게 하였더라.
33.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36. 거기 앉아 지키더라.
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38. 이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죽으심) 사 53장 하나님 팔, 뉘게 나타났나?

들어가는 말

많은 사람들은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고난을 당하신 성금요일에 금식을 하곤 합니다. 저도 오늘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당하신 그 하루만이라도 금식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해조차 빛을 잃던 제 6시에 기도하노라 엎드려 있었던 저는 어느새 잠들어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상에 달려 고통당하시던 그 여섯 시간조차 깨어 그 고통을 나눌 수 없어 잠자고 있었던 나, 이런 연약한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1. 예수님그리스도는 연약한 죄인을 위해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분의 팔이십니다.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습니까?
주 앞에서 연한 순같이 자라나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타났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우리 예수님은 연한 순 같으셨습니다.
연약하기 짝이 없는 아기로 태어나셨습니다.
헤롯에게 대항할 수 없어 애굽으로 피하심으로 위기를 모면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습니까?
연약하여 범죄할 수밖에 없고, 연약하여 죄의 종노릇을 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도우시는 하나님의 팔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롤프 이탈리안더란 사람은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로의 빈민촌을 바라보고 서 있는 2310피트의 코르코바도의 그리스도상에 열심히 기어오르는 가난한 사람의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그 가난한 사람은 그리스도상에게 말합니다.

나는 저 아래 있는 더럽고 비좁은 숙소에서 당신께로 기어 올라왔습니다. 호와로운 이 도시 맞은 편에 있는 저 아래 빈민촌에는 나같은 사람이 900,000명이나 있습니다. 나와 함께 빈민가로 가서 거기서 우리 함께 살아요. 우리 가운데 살면서 당신과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믿음을 주세요.

주님께는 이런 연약한 자들을 위해 준비하신 팔이 있는 줄 압니다.
2천년전 주님께서 죄와 사망의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를 찾아오신 까닭은 바로 이런 연약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권세 가운데 그 백성의 신음과 고통을 돌아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등 됨을 버리시고 육신을 입고 임마누엘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죤 스타트 박사는 이방신을 연구하다 이런 글을 썼습니다. 그를 찾아온 신도는 너무나 연약하고 불쌍하여 도움을 요청하나 불상은 한없이 자애로운 모습으로 좌정한 채 눈을 감고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그 백성의 고통에 눈감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눈을 부릅뜨시고 그 백성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 고통 가운데 찾아오신 분이십니다. 그 고통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견디기 힘든 고통 가운데 거하시는 계시는 분이 계십니까?
나를 위해 걷어붙이신 하나님의 팔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도우시길 원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습니까?
여호와의 긍휼을 바라는 죄인에게 나타납니다.

우리 죄는 반드시 치료받아야 할 병임을 아십니다.
그리스도는 그 죄를 치료하시는 신묘한 약이십니다.
그 치료약은 효과가 즉각적이고 완벽합니다.

자기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은 압니다. 하나님의 팔이 얼마나 연약한  자를 힘있게 붙드시는 지를 말입니다. 십자가상의 강도는 그 증인입니다.

로마 통치하에서 고통 당하던 연약한 성도들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의 팔을 믿습니다.
우리는 북한 성도들과 같이 연약하여 핍박을 당하는 자들에게 언젠가 나타날 여호와의 강하신 팔을 믿습니다.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습니까?
주 앞에서 연한 순같이 자라나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타났습니다.
연약해질 때, 죄에게 패배할 때, 연약한 자를 위해 준비하신 여호와의 팔을 기억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이 기이한 치료약을 세상 환자들에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기본 원리를 자랑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2. 예수님은 마른 땅같은 나의 인생에서 나온 줄기가 되십니다.

성경은 메시아를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와 같이  낮은 자의 모습으로 계시하셨을지라도
유대인들은 영광스러운 왕으로 오실 이 세상의 왕을 찾고 있었습니다.

세상은 마른땅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는 마른땅이었습니다.
제자들도 마른땅이었습니다.
미천하고 연약하여 주님께 아무 것도 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빼든 베드로의 검까지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마른땅이었습니다.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마26:52)

주님께서 사신 시대가 마른땅이었습니다.
불의와 죄악으로 황폐한 마른 시대였습니다.
악과 부패가 가득한 메마른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마른땅과 같은 그 시대에 생명의  줄기가 되셨습니다.
대적자, 원수, 거슬러 행하는 자, 선한 것이 육체 안에 없었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육체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 있다면 그것은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입니다.

시대가 어두움을 탓하지 마십시오.
밝은 태양이 빛날 때, 별은 오히려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나 해가 지고 어두움이 오면 별은 빛납니다.
위클리프, 루터, 웨슬리 등이 빛나던 시대는 바로 흑암의 시대였습니다
마른땅에 생명의 줄기를 나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청교도들이 연약하여 멸시를 받고 마른땅이 되었을 때, 주님은 그들의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가 되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수적으로 증가하여 검을 들었을 때, 싸움에서는 승리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들과의 관계를 끊으셨습니다. 검을 든 그들의 줄기가 되는 것을 거부하셨습니다.

죄성을 깨달은 강도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던 날, 많은 사람은 예수님의 은혜를 입지 못했습니다.
놀라웁게도 맨 처음 예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예수님 곁에 매달려 죽은 강도였습니다.
그에게 예수님이 바로 보인 까닭은 그가 죄인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 마른 땅 같은 강도에게 예수님은 생명의 줄기가 되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충만하심이 마른 땅 같은 우리 안에 생명의 줄기가 되십니다.
미련해서 땅이 말라갈 때 주님은 지혜의 줄기가 되십니다.
믿음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황폐한 심령에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의 줄기가 되어 주십니다.
말씀 앞에서 메마르고 황폐한 자신을 보고 있습니까?
그리스도는 마른땅에서 나온  말씀의 줄기가 되십니다.
쓰임 받기에 부족한 마른땅이라고 느끼고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넉넉히 채워 쓰시는 줄기가 되십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가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너무 약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약할  때 강함이 되시는 마른땅에서 나온 줄기이십니다.



3. 예수님께서는 나의 간고를 많이 겪으셨습니다.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태초에 말씀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그분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거하셨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제를 가지셨습니다.
시험을 많이 당하였습니다.
많이 아프셨습니다.
죽기까지 많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오 질고의 왕이여!
오, 상처의 왕이여! (스펄젼)

예수님은 나를 위해 모든 질고와 상처를 담당하신 나의 왕이십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찾아 주시려고 고엘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짐을 당하시기까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죄가 없으셨기에 그 고통은 더욱 컸습니다.
아픔은 겪어서 아는 자만이 치료해 줄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 당한 자는 내로다(애3:1)

세세에 찬양을 받으셔야  할 그 하나님께서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셨습니다.
천사들에게 경배를 받으셔야 할 그 하나님께서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았습니다.

이런 주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

렘브란트란 화가는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화폭에 담으면서 군중 속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넣었습니다. 그리고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았다. 나는 그 일에 동참하였다.

육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몸에 내려쳐진 그 채찍은 로마병정의 채찍이었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내려치신 채찍으로 그리스도가 그분의 몸과 영혼으로 가로막아 대신 맞으셨습니다.


여호와의 팔을 사랑합니다.
마른 땅같은 내인생에 생며의 줄기가 되심을 감사합니다.
나의 모든 죄짐을 감당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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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9:31-37

1. 유대인들이 죄수들의 다리를 꺾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 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요 19:31)..."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날은 "예비일", 즉 안식을 준비하는 날(금요일)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율법에 따르면 처형된 시신을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라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을 부정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죽은 시체를 신속하게 매장해야 했습니다(신 21:23). 그러므로 그들은 사형을 집행하면 신속하게 시신을 옮기고 저녁이 되기 전에 그 시신을 처리했습니다. 본문에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앞두고 있었고, 특히 그 안식일은 절기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큰 날"에 해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그 중요한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시신들을 처리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적극적으로 십자가에 처형된 죄수들의 다리를 꺾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로마인들은 일반적으로 죄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면, 백성들에게 경고하기 위해서 일찍 치우지 않고 시신을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그 시신을 일찍 치우려면 특별하게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2.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33-34]

   33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아들의 심장을 내어주신 하나님을 더 깊이 묵상하기 원해서입니다.

   우리가 젊은 시절에는 이런 복음 성가를 많이 불렀습니다.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 허리에는 긇은 창자국
   손과 발목 다 찔리신 지치신 주님의 모습
   오 나의 주님 용서 하소서 죄인 위해 고난 받으셨네
   이 세상에 생명 주시길 그렇게도 원하셨던 길"

   [김영기: 주님 가신길]

   머리에 가시관으로 짓누르고, 손과 발목에 못을 박아 죽인 것도 부족하여 로마군인의 무서운 창으로 심장을 꼭 찔리셔야만 하셨는가!

   허리에는 굵은 창자국!

   로마군인의 무서운 창으로 심장까지 꼭 찔리셔야만 하셨는가!


* 병사들 중에 한 사람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의 죽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창을 가지고 주님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서 주님의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흘러나왔습니다(요일 5:6). 사도 요한 당시에 유행했던 한 이단은 주님께서 육신을 입은 것은 실제가 아니라 환상에 불과했다(가현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주님께서 죽으실 때에 물과 피가 흘러나온 것을 증거함으로 이러한 이단의 주장을 반대했습니다. 의학박사인 William Stroud는 피와 물이 흘러 나온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심장의 파열은 엉청난 정신적 고뇌로 인해 일어난다. 심장이 파열하면 즉시 사망이 찾아온다. 그리고 심낭에는 심장을 돌던 피가 터져 들어간다. 이러한 파열 현상이 일어나면, 혈액이 분리되어 물과 피로 나뉘어진다. 이 경우에 심낭이 팽창하여 혈청이 물과 피로 불리된 채로 가득 차 있게 된다(Treatise on the Physical Cause of the Death of Christ, London, 1847, p.74, 336)."


[예화]

롤프 이탈리안더란 사람은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로의 빈민촌을 바라보고 서 있는 2310피트의 코르코바도의 그리스도상에 열심히 기어오르는 가난한 사람의 이야기를 적고 있습니다. 그 가난한 사람은 그리스도상에게 말합니다.

나는 저 아래 있는 더럽고 비좁은 숙소에서 당신께로 기어 올라왔습니다. 호와로운 이 도시 맞은 편에 있는 저 아래 빈민촌에는 나같은 사람이 900,000명이나 있습니다. 나와 함께 빈민가로 가서 거기서 우리 함께 살아요. 우리 가운데 살면서 당신과 하나님께 대한 새로운 믿음을 주세요.


3.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니라(35).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함이라(36). 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요 19:35-37)."

 사도 요한은 십자가 밑에서 이 현장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는 현장을 직접 본 증인이 이 사실을 증거했기 때문에 이 증거가 진실하며 믿을 만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는 친히 그 현장을 목격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실이 참이라는 것을 믿게 하려고 그 일을 기록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저자 요한은 사람들에게 주님을 믿게 하려고 이 책을 기록했습니다(요 20:31). 저자 요한은 이 사건을 보고, 구약에 예언된 두 가지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두 가지 사건은 바로 주님의 뼈가 꺾이지 않을 것이며, 또한 창으로 찌르는 것을 보게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다른 두 강도와 달리 미리 운명하셨기 때문에 뼈를 꺾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 로마 군사가 주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일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첫 번째 예언, 즉 뼈가 꺾이지 않는다는 예언은 (출 12:46, 민 9:12)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이 두 구절은 모두 유월절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이 두 구절은 희생물을 바칠 때에 절대로 뼈를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을 인류를 위해 희생된 유월절 어린양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이 사건이 (시 34:20)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다음과 같이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시 34:20)." 두 번째 예언, 즉 창으로 찌르는 자를 볼 것이라는 말은 (슥 12:10)과 관계가 있습니다(계 1:7 참조). 사도 요한은 로마 군사가 주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는 것을 보면서, 창을 찌른 자를 보게될 것이라는 스가랴가 말한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두 가지 사건을 성취하기 위해서 주님의 뼈가 꺽이지 않게 하셨고, 또한 로마 군사가 주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이 사건을 직접 목격하고 주님의 죽음이 구약의 예언을 성취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이 일을 깨닫고 나서 크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증거하여 주님을 믿게 하려고 이 사실을 복음서에 기록했습니다.



[예화]

   세계적인 여성 골퍼 신지애 씨가 4월 8일 MBC '황금어장'의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목회자였던 아버지와의 일화를 공개했다.

골프 선수들은 집안이 부자일 것이라는 편견에 대해 그녀는 "골프를 시작한 초등학교 5학년 때 교회 목사님인 아버지의 월급이 85만원이었다"며 "지방 대회에 출전할 때는 숙박비가 아까워서 당일 새벽에 출발했고, 밥은 엄마가 싸주신 김밥만 먹었다"고 어려운 시절을 회상했다.

신 씨는 "중3 때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나서 탄 보험금으로 집안 빚을 다 갚고 남은 돈이 1700만원이었다"며 "그 때 목사님인 아버지가 '엄마 목숨하고 바꾼 돈이다. 이 돈으로 열심히 골프를 시킬 테니까 잘 하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어린 신지애 씨에게 이때부터 골프는 온 가족의 생계 수단이 됐다. 5년전까지만 해도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15만원짜리 집에 살았었다는 신 씨는 현재 연봉 12억원에 각종 후원금을 받는 유명 프로골퍼가 됐다. 그럼에도 신 씨는 아버지가 모든 돈을 관리하며 용돈을 받아서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