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30 January 2020

순종과 헌신


 

하늘 위에서 내려오는 평화


화평케 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어느 공동체나 화평케 하는 사람은 그립다.
 
건강도 좋고, 재물, 권력도 좋으나,
마음에 넘치는 이 평화만 하랴!
 
이 시대는 불안의 시대,
이 시대는 불신의 시대,
이 시대는 불확실의 시대,
그래서 평화가 더 그리운 3()의 시대
 
 
풍랑이 있기에 더욱 그립고
적이 있기에 더 붙들고 싶은
 
그분은 한번도 나를 좌초시키지 않았다
 
세상에 마취 당하여 무감각한 자
은혜로 옷 입히시고 찾아오시는 평화
 
회개하는 예루살렘에도 내리고
눈물로 씨를 뿌리던 농부의 연단 된 심령에도 내리려
 
겸손히 나귀 타고 오시는
평화의 왕
예수
 
종려가지를 들었던 이들은 성문에서 노래하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우리 시대의 3불을 일시에 날려버리시는
 
평화의 왕이시여
 

기쁨과 기도와 감사


 

Wednesday, 29 January 2020

내 안에 거하라


 
새는 아마 모를 거야
노래하는 새들은 모를 거야.
자기가 부르는 노래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겠지.
 
목숨보다 더.
 
아리따운 새들은
어쩌면 자기의 장식인 깃털이 가장 소중할지 몰라
 
목숨보다 더.
 
그러나 어느 날 그 소중한 목숨은 날아가고
아름다운 깃털을 이불 삼아 몸이 산화되어 갈 때
 
그가 불렀던 많은 노래를 생각하게 될 거야
그 현란했던 깃털의 의미랑
 
 
그래서 생각해본 거야
왜 잡히시던 날 밤,
포도나무이신 주님께서
가지인 우리더러 열매를 맺으라 하지 않으시고
대신
'내 안에 거하라'고만 말씀하셨는가 하고
 
가지에 달랑 달린 열매를 보면
극상품일수록
농부의 역량은 빛이 나거든
다만 가지는 줄기에 달려 있었을 뿐
 
새는 아마 모를 거야
노래하는 새들은 모를 거야.
자기가 부르는 노래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겠지.
 
 
 
 
 
 
 
 
 
 
 

순기능 회복


 
만취하여 길을 가는 두 청년
같은 기숙사에 사는 프린스톤 대학 친구
교회 앞을 지나다가
그 게시판에 기록된 말씀을 읽었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15)
 
그들은 큰소리로 복창한 후 박장대소.
얼마나 재미있는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니."
 
웃으며 복창한 이 말씀이 한 청년의 심령을 흔들 줄이야
가던 길을 돌이켜 그 교회로 들어가고.
 
주님, 제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았고
제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고 있습니다
 
회개한 그는 빛의 길로 걸어갔네.
그리고 30,
미국 22대 대통령(클리브랜드)이 되었네.
 
그러나 다른 친구는 자기 길로 계속 나아가
 
옛 생활 그대로 살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네.
 
어인 일일까?
 
한 분은 하나님 형상 회복
한 분은 죄에 그 기능을 그 마비 당한 차이네.
 
많은 사람들은 외적인 청결에 관심이 많지.
가득한 탐욕과 악독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잘도 도배하지
하지만 속 사람이 새로워지지 않는 겉 사람은 '평토장한 무덤'일 뿐.
 
너 하나님의 사람아
성령께서 살며 일하시도록
순 기능을 회복하라.
 
죄는 사람의 순기능을 파괴하나니
하나님의 의만 그분의 형상을 회복한다네.
 
 

포기할 수 없는 일


물거품이 되는가
하나님의 꿈은
무효로 돌아가는가
돌판에 새겨진 하나님 언약은
 
금송아지 우상을 부어만들고 춤추는
세상으로 신명난 저 백성을 하나님은 포기하시는가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고
너로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 (14)
 
모세 손에 들린 두 돌판은 깨뜨려지고
언약은 휴지조각처럼 찢어지는가
 
남은 건 오로지 하나님의 심판뿐인가
 
엎드리는 한 사람
사십 주야
먹지 않아도
마시지를 못해도
마음을 쏟아 간구하는 한 사람
 
이 백성의 죄악을 보지 마옵소서
주의 백성을 멸하지 마옵소서
주의 기업을 멸하지 마옵소서
주님의 이름을 위해.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붙든 모세
 
심판 아래 놓인 소돔 성을 붙들고 기도하던 아브라함처럼
앞에 놓인 사망의 벽을 눈물로 뚫던 히스기야처럼
 
주의 큰 능력과 펴신 팔을 붙든 한 사람의 기도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네
 
"네가 깨뜨린 처음 판에 쓴말을 내가 그 판에 쓰리니"
 
하나님의 은혜가 두 번째 돌판에 내리고 있었네.
 
회복된 언약을 안고
그 백성 중에 돌아오는 용장이며
이스라엘의 온유와 겸손이여
 

그는 알지


 
"그곳에선 흑염소가 흰 염소보다 값이 덜 나갑니다"(남아공)
 
흔들리는 깃발
 
"미국에서 버리는 음식으로 제3세계의 기아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남한에서 버린 음식, 굶주린 북한 전 주민을 먹여 살릴 수 있다"
 
구호만 메아리치는 세상
 
무엇 하나 변변히 포기해본 적이 없는 나는
무얼 가려먹는다는 일이 자꾸만 사치스럽고
땅에 떨어진 한 톨 음식이 못내 송구스럽다
 
이래저래
터무니없이 서로 다른 불문율로 씨름하며
보내버린 반평생
많은 일로 분주한 것 같으나
별로 이룬 것 없는 그런 인생
 
아브라함 따라 모리아 산에 오르니
한 약속이 보인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를 번제로 드리라시는데
옳은 말씀!
고개를 끄덕이는 그 귀에
그 약속은 뿌리를 내리고.
 
이른 아침
아들의 손잡고
그 산을 향해 일어나는 아브라함의 이른 아침에
그 약속은 싹트고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다
아들 이삭을 어우르는 말에
그 약속은 꽃피고
 
하나님 경외함으로
사랑하는 외아들 올려놓은 믿음에
그 약속은 열매를 맺는다.
 
그렇지
100세에 아들을 선물로 받아본 자는 알지
 
너는 복의 근원이 된다 하신 약속은
단지 앞으로 오실 축복의 표(sign)일 뿐이야

다시 바네아에 서서


그럼 뭔가?
그분 없이 걸어온 광야
멀고도 척박했던 그 길은!
 
나이 오십이 가까운 어느 날
귀밑에 하이얀 서리가 맺히도록 차가운 생각이 스쳐가네.
 
분명 옳다는 길로 걸었었는데
또다시 그 바네아 땅이라니.
 
원망을 하다
근심으로 뒤척거리다
밤들을 지새워버린 영적 무감각이여.
 
하지만 나는 까마득하게 몰랐었네
주님의 깊은 마음을
 
반석이 터지도록 솟구쳐 오르는
시원한 물을 마시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네.
 
그래,
그분이 주시고 싶어하신 건 바로 이 생수였어.
언제 마셔도 목마르지 않는 이 물.
 
그분이 주시고자 하는 선물은
언제 열어보아도 포근한 이 약속
 
철철 넘쳐흐르는 감격을 추슬러
그 강을 건너라는 거야
그분이 약속한 땅으로 가라는 거야

약속


다시 바네아에 서서
약속하신 그 길로 오시는 님
그는 알지
포기할 수 없는 일
순기능 회복
내 안에 거하라

아직 우리는 남일 수 있다.


몇 십 년 살을 맞대고 살던 부부
서슬 퍼런 칼날을 휘두르고
이별들을 선언하는 세대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이웃을 생각한다.
 
인종이 같고
종교가 같으나
우리는 이웃이 아닐 수 있다.
 
스쳐간 제사장이랑 레위인이
여리고를 지나갈지라도
강도 만난 그 나그네의 이웃은 아닌 것처럼
 
아무래도
그의 이웃은 긍휼히 여긴.
선한 그 사마리아인인 것처럼.
 
 
북한과 남한은
엎드리면 키가 닿는 땅
너무나 가까운 혈육.
 
그러나 지난 50년간
그들은
결코 이웃이 아니었다.
 
우리는
교회가 같고
말도 같은 한국인
한 분 하늘 아버지께
예배하는 교우들.
 
그러니까 우리는 이웃일 수 있을까?
 
아픈 상처를 싸매 주고
기름으로 바르고,
자신의 나귀를 내어 주막집까지 가기까지는
아직 우리는 남일 수 있다.
 
 
아까운 기름이 부어지고
주머니의 돈이 그를 위해 지불되기까지
우리는
이웃이 아닐 수 있다.
 

사랑이란!


사랑이란
봄날의 꽃보다 아름답고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귀엽다.
 
때로
 
꽃은 아름다우나
그 꽃을 터치는 아픔이 있고
아기는 귀여우나
그 아기를 낳은 엄마의 산고가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
사람이 되시고
그것도 부족하여
종이 되시고
삶을 주시러 죽은 자 되셨다.
 
사랑한다면서
무엇이 되었나?
낮아질 수 있었는데
종일 수 있었는데
부인할 수 있었는데.
 
 
죄로 썩은 냄새나는 내가
너무 고상해
때론 하나님보다
더 높아지려 해!
 
꽃은 아름다우나
그 꽃을 터치는 아픔이 있고
아기는 귀여우나
그 아기를 낳은 엄마의 산고가 있다.
 
그래서
 
사랑이란
봄날의 꽃보다 아름답고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귀엽다.

거절하는 사랑


'No!'
짧은 말이지만
정작 그렇게 말하긴 힘들다
 
이젠 더 이상 이 나라의 왕자가 아니구나
40년 정든 나라 거절하고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다가가던 그 중년 심장 박동 수는 얼마였을까?
 
천하에 아리따운 여인을 뿌리치고
감옥에 곤두박질 친 그 청년 발걸음은 얼마나 빨랐을까?
 
그 맛있는 진수성찬 뒤에 두고
야채만 입에 문 소년들의 뱃속은 얼마나 허기졌을까?
 
돈 쓸 일 너무 절실한데
굴러온 금 덩어리를 돌려주는 선지자의 눈은 얼마나 어지러웠을까?
 
내가 본 현실은 너무나 컸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거절할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을 울며
문을 걸어 잠근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해도
,
내게는 아니었기에...... .
 
비록
귀로 들은
그분에 대한 소식은 몇 마디밖에 없지만
구원을 향하여
붉은 줄을 내리는 여인이여.
 

당신의 전부를 사랑합니다


루스벨트 부인 엘리나
10세에 고아가 되어 노동으로 뼈가 굳은
신앙의 여인
 
어린 자녀를 먼저 천국에 보내고
영혼까지 쓰라린 그 순간
한 기자는 그녀 곁에서
놀라운 답변을 들었다.
 
'아직 나에겐 사랑하는 네 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병든 다리로 인하여 고통 당하던 그 노년의 남편은 물었다.
 
'폐품과 같은 나를 아직도 사랑하오? '
 
'나는 당신의 다리와 결혼한 것이 아니잖아요.
당신의 전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늘 이래서 아름답다.
 
긍휼이란 새 포도주는 단비처럼 내리고
그 자녀는 소낙비처럼 부어주시는 은혜의 단비를 받아 자란다.
 
성도는
오늘도 새 부대를 준비하며
풍성히 받은 열매로 베풀 이웃을 생각하는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이다.

이런 인생은 참 아름답다.


여기 두 사람이
인생의 졸업식을 갖고 있다.
이름하여 엉겅퀴 같은 인생
예수님 십자가 좌우 편에 매달린 강도들이다.
 
저들은 참으로 곤고한 인생 길을 걸어왔다.
사람들은 그들의 가시 돋친 가지를 잘라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다.
 
'저런 사람들이 없어야 우리는 살 수 있어!'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을 위해 자신을 꺾으셨다.
스스로를 꺾으신 자리에
저들을 접목시켜 주셨다.
 
아버지여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그때, 왼편 강도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비웃었다.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그리스도라면 자기나 구원해 보라지
 
그의 오만한 죄의 무게로 가지는 이내 꺾어지고
기고만장한 인생은 억장처럼 무너졌다.
 
그러나 또 다른 오른편 강도는
접목된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바라본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그를 위해 잘리운 예수
그의 인생을 하나님께 접목시키신 그리스도
 
내가 진실(眞實)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그의 인생 화병에는 이내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고
사람들은 그의 인생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를 닮았다며 고개를 갸웃한다.
 
그도 역시 추한 인생을 살았었는데
그가 피운 꽃이래야 들꽃일 뿐이었는데
사람들은 그의 초라한 화병에서 아름다운 꽃을 본다.
 
그의 외로운 가지에서 샤론의 꽃 예수님을 본다.

때로 눈이 열리면


때로
눈이 열리면
깊은 밤
그 원주민 마을, 달빛이 대낮처럼 밝다.
 
때로
귀가 열리면
교회 뜰 새들의 노래 소리가
오케스트라 연주보다 아름답다.
 
때로
영혼이 열리면
네 잎 클로버를 찾던 사람이 전도를 꿈꾼다.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그 영혼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소서!
 
믿음이란
이래서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는 것!
 
부정적인 눈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
 
마지막 잎새를 보며
저 잎이 떨어지면 내 인생도 끝입니다 하는
몸부림보다 .
오렌지를 갉아먹는 토끼를 보면서도
주여 원하시면
내면의 암 덩이를 저리 먹게 하옵소서
기도할 수 있는 것
 
때로 눈이 열리면.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콩밭에서 콩서리하고
밀밭에서 밀을 잘라 구워먹노라
불놀이하던 어린 시절
 
장작을 모아두고 불을 지피노라면
불씨는 늘 소중하였어.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겨자씨 만한 불씨 보여도
잘 마른 지푸라기들을 모아서 그 불씨 위에 쌓았지.
조심조심 입으로 후-
 
남아있는 불씨는 조금씩 그 불씨의 영역을 넓혀 가고
타오른 불은 이내 마른나무에 옮겨 붙고,
마침내 장작까지 태웠어.
축축이 젖은 장작까지.
 
'너희에게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더러 들리어 저 바다에 던지우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요'
 
이런 큰 말씀을 읽노라니
자꾸만 어린 시절이 생각나네.
 
--
그 작은 믿음을 불어 살리시느라
얼마나 입술이 마르실까!
연기만 피워내는 내 작은 믿음 때문에
너무너무 눈이 매우실 꺼야.
 
내 믿음은 비록 작지만
겨자씨만큼도 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걸 소중하게 생각하시나봐.
불씨와 같이 붙드시고
그 불씨와 같은 내 작은 믿음으로도
하나님의 장작들을 태우시고,
생나무와 같은 불신자들까지 태우시고
교회를 이루어 가시려나 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에너지로 쓰시려나 봐.
 
'나에게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으면.' 

믿음과 사랑과 소망은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때로 눈이 열리면
이런 인생은 참 아름답다.
당신의 전부를 사랑합니다
거절하는 사랑
사랑이란
우린 아직 남일 수 있다
 

값진 옷을 입었으니


 
제사장의 옷을 살피다가
너무나 값진 보석들로 채워진 옷,
$400만불짜리라는 대제사장의 옷을 읽다가
의문 앞에 선다.
 
도대체
대제사장이 왜 이처럼 비싼 옷을 입어야 하는 거예요?
하이얀 세마포 옷 한 벌이면 족하지 안습니까?
 
하지만
그리스도로 옷 입은 자신을 살펴보면서
깜짝 놀란다.
 
내가 입은 의의 옷값이
대제사장보다 훠-
더 값진 그리스도 보혈의 옷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왕 같은 제사장이여
값진 옷을 입혀주셨으니
일어나
제사장직을 아름답게 수행하라.
 
 

소원


늘 나와 함께 살고 싶어하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오늘 나를 찾아오신 분을 맞이한다.
 
어디서나 환대 받으실 분이신데
구태여 나를 찾아오신 분.
 
그는 나의 주인
꼭꼭 손가락 걸어 문을 연다.
 
이렇게 하여 난 그분이 사시는 새로운 주소가 되고
이 집엔 하나님의 성령께서 살고 계십니다.’
문패를 붙인다.
 
하지만 방 안 여기저기엔
옛 자아가 쓰다버린 쓰레기들이 잡다히 널려 있고
처리되지 못한 욕심들은 죽순처럼 자란다.
 
누군가 말했다
 
"지혜로운 올빼미 옹이 참나무에 살았는데,
많이 볼수록 적게 말했고,
적게 말할수록 많이 들었다.“
 
 
찬양의 멜로디가 늘 울려나오는 목이고 싶은데,
 
기도가 끊임없이 솟아나는 가슴이고픈데
 
감사가 일마다 넘치는 마음이고픈데
 
기쁨이 함박꽃처럼 피어나는 입술이고픈데 ......... .
 
난 왜 이 올빼미만큼도 찬양하지 못할까?
 
 

죽은 게 아니라 자는 것


 
주님께서 보시니
그 아이는
자는 게다.
 
그들이 보기엔 분명 끝난 인생인데
우리 보기에도 죽은 인생인데
주님께는
 
잔다.
 
그렇게 보면,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 사람도
일어나지 못하여 가슴 아픈 그 사람도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
 
저토록 얼어붙은 북녘 땅도
사실은 자고 있을 뿐.
 
주님께서 일어나라 명하시면
이제라도 당장 일어날 사람들.
 
중국을 보라.
문화혁명이 온 대륙을 휩쓸고
믿는 이를 이 잡듯이 짓이길 때,
 
누군가
중국은 '잠자는 거인'이라 했다.
 
그렇다
중국 성도들은
죽은 게 아니었다.
 
오늘도
죽은 듯이 누워있는 나의 소중한 사람을 바라보며
아이야 일어나라
부르시던 주님을 생각한다.
 
그는 분명 죽은 게 아니라 자는 게다.
 
일어나라!
나의 소중한 사람아
 
부르실 날을 기다리며 자고있는 게다
 

성전 널빤지 고백


행여 나를 상할세라.
돋친 가시를 키우며
척박한 벌판에
버려진 가시나무였습니다.
 
이름하여 조각목
 
어느 날
그분을 만나
나의 날카로운 가시는 모조리 잘리고
껄끄런 성격들도 이리저리 대패로 밀려
겉 사람을 이렇게 버렸습니다.
 
오직 속 사람만
그분의 손에 들려
굳건한 반석이신 그분 위에 놓였느니
'그 위에 네가 서리라'
는 성소의 널빤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나처럼
잘리고 밀린 또 다른 속 사람들이랑 우리로 모여
그분이 흘리신 사랑의 띠로
하나되어 섰습니다.
 
더 이상 나는 돋친 가시가 아닌
광야에 버려진 껄끄러운 존재는
더욱 아닌 채로
 
황송하게도 정금으로 입히고
공교히 수놓은 휘장에 쌓여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으로 서있습니다.

출애굽 해야 하는 거야


 
몸은 버얼써 출애굽 하였고
아침마다 내리시는 만나를 먹으나
속사람은 여전히 애굽에서 종사는
이스라엘의 아픔이여!
 
그리도 소중한 보석들을 모아
금송아지 만들고
흐드러지게 춤을 추는
불안한 족속이여!
 
그래,
그 말은 맞아
나의 옛사람에 속한 죄와
그 안에서 자라는 모든 죄의 유산들은
갈고 갈아
맹물 된 자아에 타 마셔야 하는 거야.
 
그 안에서 이룬 곤고한 생각의 파편들과
, , 말버릇까지
모조리 배설물로 쏟아 버려야 하는 거야.
 
향도 썩으면 악취가 날새라
소금을 치게 하시잖나?
 
지명하여 주심도 감사한데
지혜로 채우시고
건축기술이면 될 법한데
성령으로 채워
성전 되게 하신 주님이시기에
 
나는
정녕
출애굽 해야 하는 거야.
옛사람으로부터 

이런 집을 짓고 싶다


내가 집을 짓는다면
지붕은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덮었으면 한다.
형제의 과실은 기와로 덮고
핍박하는 자는 기도로 덮었으면 싶다.
 
오른뺨을 때리는 자에게 왼뺨을 돌릴 수 있도록
진리의 둥근 기둥을 세우고
어떤 염려도 내 방을 채우지 않도록 방은 그분의 나라와 그 의로 훈훈하게 채우고 싶다.
 
창문은 의의 태양을 향해 열고
온갖 죄악 된 욕심일랑 숨을 곳이 없을 만큼
밝은 빛을 맞아들여야지.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거실은 좀 넓어야 한다.
오리를 가자고 하는 자에게 십 리를 가 줄 수 있는 아량과
속옷을 달라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벗어 줄 수 있는 넓이로.
 
식탁은
대접받기보다
대접하기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덮으리라.
 
 

성전 회복


 
이런 집을 짓고 싶다
출애굽 해야 하는 거야
성전 널빤지 고백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
소원
값진 옷을 입었으니
 

맙소사 하나님의 작품이네


I.
 
뉴욕 스미소니언 쿠퍼-휴이트 국립디자인미술관이 이 보관 중이던
무명 화가들의 작품 모음 상자에서
미켈란젤로의 작품 한 점이 발견됐다.
이 작품의 가치는 1,000~1,200만 달러.
 
이탈리아 르네상스 연구학자인 티모시 크리포드 경은
이 작품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맙소사, 미켈란젤로 작품이네".
 
 
II.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바 된
성도의 값은?
 
다윗을 가치 있게 하신 그분께 여쭈어 보라.
 
자기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충성된 신하의 아내를 차지하고
끝내는 우리야의 생명까지 취한 그 악독한 죄를
용서할 수 있었던 분께
 
벼락을 내렸더라
할 법한데
긍휼을 베푸신 분
 
죄 사함 받은 다윗을 보며
복 있는 사람이라는
주님의 마음을 보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바 된
성도의 값이 궁금하거든
 
연약할 때
경건치 아니할 때,
죄인 되었을 때,
찾아와 일을 이루신 주의 구원을 보라
 
"맙소사 하나님의 작품이네."

망각


차를 몰고 나가려 시동을 걸다가
깜빡 잊고 온 게 생각 나
다시 오르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하지만 방안에 선 나는
망연자실
내가 무엇을 가지러 왔던가!
 
어쩌면 이렇게 까마득하게 잊어버릴 수 있나!
혹시 치매가 벌써?
 
그러나
너희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라신
주의 말씀을 생각하며
하나님께서도 나의 허물을 이렇게 잊으신다는
말씀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혜로운 치매(?)가 있으시구나
하고
위로를 받는다.

헤아릴 길이 없는 그 사람의 깊이


뻐언 - 히 그 배반이 보이셨으련만
열두 제자로 부르신
헤아릴 길이 없는 그 사람의 깊이
 
그는 도적이라던데
재정을 맡기시기까지 신뢰하신
헤아릴 길이 없는 그 사람의 깊이
 
고양이에게 고기를 맡기랴 싶은데
능력으로 옷 입히시고
이내 짝지어 사도로 파송하신
헤아릴 길이 없는 그 사람의 깊이
 
그것도 부족하여
이는 내 살이라시며 떡을 떼어주시고
언약의 피라시며 잔을 주시던
헤아릴 길이 없는 그 사람의 깊이
 
배반의 길에 분주하여 더럽혀진 그의 발을 씻기시고
끝까지
발끝까지
그의 부끄러운 그곳까지
씻기시던
 
헤아릴 길이 없는 그 사랑의 깊이
 
그것을 사람들은 위대한 겸손라지만
아니야
그 떡을 먹은 가룟 유다 발꿈치에 매어침 당한
그 사람은
오늘 나의 십자가에 붉게 달리신 하나님
 

Tuesday, 28 January 2020

용서의 바다에 서서


날이 좋으면 호숫가를 거닐고 싶다.
 
그곳엔 청둥오리가 유유히 가족을 거닐고
때로는 백조들이 호상 집회를 한다.
 
저들에게도 풍랑은 있고
생존경쟁은 있을 법한데
왜 저리 유적할 수 있는가!
 
평화를 누리는 호반의 물새 곁에서
분요한 역사 한 복판을 지고
그토록 넉넉함을 나누어주신 십자가상의 그 분을 헤아려 본다.
 
세상은 늘 용서에 갈증나지만
아버지는 늘 용서에 부유하시나니
아무래도
용서는 아버지의 몫.
 
 
그러고 보니
백조여,
너희는 아버지께서 용서하시던 마음을 닮았는가!
 
 
주안에서 형제 된 우리도
때로 용납이 어려운 때가 있는데
 
,
용납의 호상에서 자유를 헤엄 치는 백조여
넓은 마음이여

나의 가장 소중한 보석


내 인생을 돌이켜 보며
나를 용서해준 많은 분들을 생각한다.
 
허물 투성이인 나의 어린 시절인데
야단을 맞은 기억은 없다.
철없는 나를 키우신
어머님은 안으로 내밀히 썩어 가신 게다
용서한다는 말씀도 없이
 
나란 사람이 모난 곳이 하 많아
크고 작은 많은 상처를 주변에 남겼을 법한데
큰 손가락질 자국 남아있지 않은 것 보면
많은 사람들이 나의 허물을 묻은 게다.
아무도 볼 수 없는 깊은 마음에
 
그러나 나는
나를 용서해준 사실조차도 모른 채
나 잘난 줄 살아왔는가!
 
오늘도 요8장을 읽다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그녀를
'여인이여' 존중하시고
용서를 주시는 그분 곁에서
 
지난 50년간 크고 작은 죄들로 얼룩진 내 인생을 찾아오시는
넉넉히 탕감해주신 주님을 만나게 되고
그 용서의 크기를 헤아려 본다.
 
100데나리온 빚진 형제를 참을 수 없는
옹졸한 나의 속아리에
늘 넘쳐나는 주님의 일만 달란트
 
그리고 보면,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보배는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내 인생에 담아 주신 하나님의 용서다.

용서받을 수 있나요?


나의 가장 소중한 보석
용서의 바다에 서서
헤아릴 길이 없는 그 사람의 깊이
망각
맙소사 하나님의 작품이네
 

오른 편 강도의 독백


저 포악한 로마 심판하여
메시아임을 증명하라
주를 향해 외치는 왼편 강도의 소리
 
그러나 당신은 그 원수 로마 구원하려
죄인 형틀에 달려 있었네
 
성큼성큼 다가오는 죽음,
내 앞엔 부끄러움만 쌓이고
 
못 고치는 병 없으시더니
죽은 자까지 살리시더니
옳으신
그분은 옆에 달려 신음을 토하시네
 
여기서 하실 일이 무얼까?
쓰린 마음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진실을 올리었네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
 
놀라운 답을 들은 바로 그 시간
온 세상은
내가 걸어온 삶의 여정만큼이나 어두워졌고
오직 눈앞에 깜깜한 죄악들로 눈을 뜰 수 없었지만
 
깨어 보니
눈부신 길을 가고 있었네
 
()과 사()가 갈리는 그 지점에서
그분의 십자가를 붙든
나는
낙원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네 

혈루병 든 여인의 독백


평안이 없었어.
나처럼 열두 해를 피 쏟으며 살아봐
내가 입은 옷, 누운 자리, 앉았던 자리는 모조리 부정하다
사람이 그리워 안아본 그 사람까지 부정하다
 
많은 의원에게 헛되이 재물만 쏟아 붓고
고침 받을 수조차 없는 아픔이라니
고통조차 숨겨야 하는 부끄러운 인생이라니.
 
'이렇게 아픕니다. 주님'
 
그 절망의 어느 날,
온 성내에 울리는 예수님께 관한 낭보가 날아왔어.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데.'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는 어떻고?'
'귀신들려 젊음을 낭비하던 거라사인도 고치셨데.'
 
 
나는 들었지
거라사인에게 찬송의 옷을 입혀주시고
영혼까지 회복시켜 주신 분의 이야기를.
 
그래, 이런 주님이시라면,
내 아픔쯤은
'그 겉옷만 만져도 나을 수 있겠다.'
나의 내면에 또렷한 믿음이 생겼어.
 
 
그분의 뒤로 갔어.
 
자네도 읽었지?
 
'그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터질 듯한 가슴을 안고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고 싶었어.
갈릴리 바닷가를 달리고 싶었어.
 
'나의 아픔은 끝났다!'
 
한번 마음껏 외치고 싶었어.
 
달려가 안아보고 싶었어
그 동안 유리되어서 보지 못했던,
너무나 사무치게 그리운 사랑을.
 
그런데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야.
`내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
'내게서 능력이 나갔다.'
'나은 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고하라.'
 
주님!
왜 이러십니까?
지난 부끄러움을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꼭 이렇게 드러내셔야 하나요?
낫게 하셨음을 알리셔야만 하나요?
 
하지만 오래지 않았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곳까지 오신
주님의 마음을 안 것은 .
 
'다 이루었다!'
 
십자가에서 선언하실 주께서
나에게 이루실 일이
병 치료만이 아님을!
그것은 내 영혼까지 구원하는 것.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회복하는 것!
감사와 기쁨과 영적 깊은 교제까지 들어가는 것.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기 시작했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은 오고.
 
이제
내 인생엔 하늘의 열매가 열리고 있네.